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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에 깃든 첫 마음

단행본 초판 1쇄본과 정기간행물 창간호를 한데 모은 유별난 서점, 충북 제천의 ‘처음책방’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오늘도 10만여 권의 책을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는 장서가 김기태를 만났다.

UpdatedOn March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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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책방

ⓒ 처음책방

처음책방의 ‘처음’이 궁금합니다.
1980년대 후반,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사회에 진출해서 처음 들어간 직장이 출판사였어요. 단행본 편집자로 일하던 당시엔 출판 산업이 호황기라서 책이 제법 팔렸지만, 이상하게 제가 만든 책은 상대적으로 부진했죠. 혹시 그 책들이 벌써 헌책방에 나오지는 않았을까 염려스러워 서울 청계천 헌책방들을 기웃거렸는데, 거기서 단행본 초판본과 정기간행물 창간호들을 만나게 되었지요. 특히 수많은 지식인 대중을 독자로 두었으나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폐간되고 만 <뿌리 깊은 나무> 창간호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설렜는지 모릅니다. 그게 아마 이 모든 것의 처음이었을 겁니다. 그 뒤로 창간호와 초판본을 모으기 시작했죠.

이 많은 ‘첫 책’을 모으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가 편집자로서 느낀 게 하나 있어요. 아무리 열심히 책을 만들어도, 정말 꼼꼼히 교정을 봐도 막상 책이 인쇄되어 나오고 나면 오탈자라든가 제작상의 결함이 반드시 있다는 것. 그때 느끼는 일종의 실망감이 어쩌면 가장 순수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말해 초판본이나 창간호에는 그런 사소해 보이는 실수에서 중대한 오류까지도 그대로 드러난 순수한 매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이 녹아 있는 초판본과 창간호를 모으기로 결심했습니다.

<KTX매거진> 창간호도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다만 당장 찾을 수 없을 뿐이죠. 이 공간에 놓인 책을 다 헤아리자면 어림잡아 10만 권쯤 될 거예요. 언제쯤 이걸 다 정리할지 도저히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KTX매거진>은 물론이고 1970년대 당시 철도청이었던 한국철도가 발행한 여러 가지 출판물을 모으기도 했는데, 그중 몇 권은 이렇게 찾아 놓았습니다. 실은, <KTX매거진>에 얽힌 추억이 있어요. 2004년 창간 당시 제작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심사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죠. 오래된 기억이라 선명하진 않습니다만, 매우 공정하게 진행한 것만은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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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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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손에 넣기 어려웠던 책이 있는지요.
어느 것 하나 손쉽게 얻은 것은 없어요. 발품과 손품, 시간품을 모두 팔아야만 하는 것들이지요. 예를 들어 최인훈 선생의 <광장> 초판본만 해도 오래전 부산이나 광주에 있는 헌책방을 뒤져서 겨우 구했지만 본책을 싼 덮개가 없는 것이어서, 최근에야 온전한 책을 다시 손에 넣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잡지 <뿌리 깊은 나무>는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53권을 모두 구하려고 긴 시간 정성을 들였는데, 얼마 전 인터넷에서 수소문한 끝에 전권을 소장한 헌책방을 발견해서 구매했답니다. 한국 최장수 문예 월간지 <현대문학>도 창간호부터 125호까지 약 10년 치를 인터넷 헌책방을 통해 확보했지요.

책방을 운영하다 보면 보람이 클 것 같아요.
책을 모으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다 보니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진 책이 포장을 뜯어낼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아, 이런 책도 있었구나!’ 감탄하면서요. 그 기쁨이란, 말로 다 하기 어렵지요. 물론 단행본이 5만여 종, 정기간행물이 1만 5000여 종에 달하니 이걸 모두 진열하기에는 공간상 역부족이라는 현실이 난감하긴 합니다.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정리했는데, 매장에 둘 것과 따로 보관할 것을 분리하는 데 이른 지금에야 겨우 손님을 맞게 되었습니다. 차츰 책방이 알려지면서 책을 기증하겠다는 연락이 전국 각지에서 쏟아지는 터라, 앞으로 더 많은 책을 들이면 어떻게 보관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즐거운 비명이 절로 나오는 요즈음입니다.

처음책방을 여행하는 애서가를 위해 한마디 남겨 주세요.
이곳을 찾는 모두가 ‘정말 멋지다!’라는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서가의 온갖 책이 저마다 책 향을 내뿜는 풍경 그 자체로 압도적인 즐거움을 주니까요. 단행본뿐 아니라 잡지나 신문 창간호가 즐비한 모습은 아마도 나이 지긋한 사람에게는 옛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젊은이에겐 묘한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나름의 관심 분야를 정해서 그 분야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잡지나 책을 찾아보는 것도 책방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직접 와서 무엇을 볼 것인지 결정해도 좋겠죠.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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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처음책방ⓒ 처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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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출판평론가이자 저작권학자이며, 제천 기적의도서관 운영 위원장을 지냈다. 월간 <출판저널>에 연재 중인 ‘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를 통해 첫 책에 얽힌 귀한 사연을 만날 수 있다.  

  + 김기태가 수집한 희귀본 BEST 5

+ 김기태가 수집한 희귀본 BEST 5

• 김기림, <바다와 나비>, 신문화연구소, 1946
• 박목월, <산도화>, 영웅출판사, 1955
• 김영랑, <영랑시선>, 정음사, 1956
• 최인훈, <광장>, 정향사, 1961
• 박완서, <나목>, 여성동아, 1970

“<바다와 나비>는 시인의 대표작이 표제작이 된 시집입니다. <산도화>는 박목월의 초기 작품을 수록했고, <영랑시선>은 김영랑의 유일한 시집이라 소장 가치가 높습니다. 1961년 정향사에서 발행한 <광장>은 최인훈 선생 생전에 개정판이 열 번 이상 거듭 출간되었던 터라 초판본의 의미가 더욱 무거워졌죠. 무엇보다, 제가 소장한 <나목>은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 아니라 ‘<여성동아> 복간 기념 제3회 50만원 고료 여류장편소설 당선작’이라는 표제 아래 <여성동아> 1970년 11월호 ‘별책 부록’으로 발행된 겁니다. 매우 귀한 책이지요.”

처음책방
주소 충북 제천시 세명로8길 23
문의 070-4141-5566
유튜브 처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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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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