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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듯 특별한, 마을 여행

사람이 살아온 흔적과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강원도 강릉 명주동과 평창 이효석문화예술촌, 두 마을을 여행했다.

UpdatedOn December 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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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무지개가 떴다. 자기만의 색을 유지하면서 함께해 가장 예쁜 모습으로 어우러지는 무지개. 마을 주민이 담과 길바닥에 손수 붓 들고 나와서 그린 그림은 주민의 꿈을 담았고 삶을 닮았다. 강릉의 옛 지명 ‘명주’와 같은 이름을 가진 명주동은 그만큼 오래되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층층이 쌓인 동네다. 한국 대표 절경인 바다와 산, 여기 여행의 또 다른 이유인 커피를 빼놓고도 강릉은 얼마나 풍부한 도시인지.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KTX를 타고 강릉역까지 2시간, 평창역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평창 진부(오대산)역에도 정차한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KTX를 타고 강릉역까지 2시간, 평창역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평창 진부(오대산)역에도 정차한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KTX를 타고 강릉역까지 2시간, 평창역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평창 진부(오대산)역에도 정차한다.

천천히 걷다 어느새 반하는 명주동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한 KTX가 강원도를 가로지른다.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창밖 풍경이 강원도로 들어섰음을 말해 준다. 한반도 전체를 지탱하는 듯, 이 땅의 무게중심을 잡는 듯 강인한 뼈대 같은 산은 간밤에 내린 눈으로 허리부터 꼭대기까지 하얗다. KTX 개통 이후 두 시간 만에 강릉에 도착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불과 몇 년 전에는 기차든 자동차든 ‘떠날 결심’을 단단히 하고 찾던 먼 곳이므로. 강릉역 너머 눈 덮인 대관령과 맑은 공기가 반갑다.

오늘은 명주동 탐험을 나설 참이다. 골목에서 다정한 주민 해설사가 기다린다. 함계정 ‘카페 명주동’ 대표는 명주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살이를 하다가 끝내 고향에 돌아왔다. 근처에 있던 시청이 이전하면서 쇠락해 가던 원도심 명주동, 어여쁘고 추억 많은 내 동네를 사랑한 이들을 모아 벽에, 길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꽃 가꾸기 달인인 주민이 제각기 ‘작은 정원’을 꾸려 골목에 내놓았고, 담벼락 안 낮은 지붕 집과 수십 년 키워 온 나무가 골목 정원과 어우러졌다. 주민끼리 보아도 예쁜 것, 웃음 나오는 것이 입소문을 타더니 전국에서, 나아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에서도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마을 자랑이라면 자신 있는 주민은 해설사로 나서 여행을 한층 특별하게 했다. 이름하여 ‘시나미 명주’, 동네를 가꾼 이들이 동네를 안내하는 프로그램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햇살박물관이다. 주민이 기증한 ‘솔’ 담배, 카세트테이프, 괘종시계 등 손때 묻은 물건에서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길이 떠오른다. 그 앞길은 한때 서울 가는 큰길이었다. 오전 8시에 출발한 버스가 오후 5시에 도착하던 시절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애틋하고 재미있다. 어디는 빨래터였고, 어디는 우물의 흔적이라 한다. 수도와 세탁기, KTX와 고속도로가 없어 무엇을 하든 시간과 힘이 훨씬 많이 들어간 날들. 지났으니 그저 웃고 마는, 꽃 같은 마을 주민의 공간이 따사롭다.

적산 가옥과 주택이 늘어선 골목은 ‘보는 여행지’이면서 ‘듣는 여행지’다. “여기 방앗간에서 고추 빻고 떡 해서 먹던 기억이 선명해요. 2층엔 국수를 널어 말렸지요.” 그 방앗간이 카페로 변모했다. “이 집은 창문이 길쭉하지요? 상엿집이라고, 상여를 모시느라 창을 크게 냈어요.” 걸음마다 해설사가 사연을 꺼낸다. 벽에 붙은 타일이 멋진 2층 카페는 친구네 집이었다 한다. “자주 놀러 간 집이 과거 모습 그대로 카페가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요.” 해설사가 어느 담 모서리, 개구리 그림의 돌을 가리켰다. “요 담벼락에 자꾸 차가 부딪힌다 해서 눈에 띄라고 그려 놨어요.” 자연석 모양에서 착안해 개구리로 색칠했는데 정말 그럴싸하다. 주민 해설사 없이는 전혀 몰랐을 이야기의 연속이다. 좁은 골목, 작은 마을 전체가 생활사 박물관이다. 연로한 주민을 위해 곳곳에 놓은 의자는 위치가 절묘해 포토 존으로 손색이 없다. 주민 해설사는 사진 교육까지 받고 기념사진을 멋지게 찍어 주는 만능 가이드다.

‘천천히’라는 뜻의 강릉 사투리에서 따온 ‘시나미 명주’라는 슬로건처럼 천천히 걷다 마을에 빠져든다. 해설사는 내내 좋다, 예쁘다는 말을 반복했다.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을을 넘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로 잘 도착한 추억, 오늘 새롭게 시작하는 추억. 두 바퀴를 돌아도 떠나기가 아쉽다. 고향이 또 하나 생긴 기분이다.


문화가 있는 날-청춘마이크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기간에 ‘문화가 있는 날’ 행사로 청춘마이크 공연이 열린다. 청춘마이크는 누구나 쉽고 편하게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청년 예술가의 거리 공연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1월 20일부터 31일까지 강릉하키센터 앞 특별 무대에서 예술가 30여 팀이 다양한 공연을 펼쳐 거리를 문화로 물들인다. 문의 www.culture.go.kr/w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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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차를 타고 마을을 만나러 간다. 이번에는 평창의 이효석문화예술촌이다. ‘메밀꽃 필 무렵’을 누가 모르랴. 수수한 꽃밭에 달빛 흐드러진 풍경은 고단한 삶에서 잠시 잠깐 피어난 사랑이고 청춘이었으니. 1936년 발표한 소설은 90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서도 우리네 애처롭고 반짝이는 삶을 기록한 문장으로 감동을 전한다. 무엇을 보면서 자랐기에 그런 문장이 탄생했을까. 그가 태어난 곳에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마음에 남을 마을, 이효석문화예술촌

평창은 이효석 선생과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고향이다. 한국 문학의 고향 가운데 한 곳이라 해도 되겠다. 선생을 기리는 이효석문화예술촌은 크게 이효석문학관과 효석달빛언덕으로 나뉜다. 문학관은 생애와 작품 세계를 정리한 전시관이고, 그 옆 달빛언덕은 이를 체험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문학관에 들러 선생의 생애를 담은 영상을 관람했다. 선생은 평창의 자연과 거기 기대어 생을 꾸리는 사람 사이에서 1907년 태어난다. 학교 갈 나이가 되자 조그만 마을엔 학교가 없어 40킬로미터 떨어진 평창읍으로 나와야 했다.

방학을 맞은 열 살배기 아이가 그 길을 걸어서 집에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산과 들판, 개울과 소박한 집, 보통은 조용하다 장날에는 떠들썩해지는 고장. 하나하나를 눈과 귀, 마음에 꾹꾹 눌러 담고 언어로 굴려 보았을 소년. “가벼운 바람에도 민첩하게 파르르르 나부끼는 사시나무의 수풀-(중략)-그의 아름다운 음악이 잠시라도 마음속을 떠난 적 있던가”(수필 ‘지협’ 중), “하늘의 별이 와르르 얼굴 위에 쏟아질 듯싶게 가까웠다 멀어졌다 한다. (중략) 어느 결엔지 별을 세고 있었다. (중략) 세는 동안에 중실은 제 몸이 스스로 별이 됨을 느꼈다”(소설 ‘산’ 중).

서울로 진학하고, 결혼 이후 함경도 경성과 평안도 평양에서 생활하는 등 그의 세계는 넓어진다. 일제강점기 모진 시절에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좌절할 일이 숱했겠으나 만년필을 애써 손에 잡았고, 세상과 예술을 논할 친구를 소중히 대했으며, 연애결혼 하기까지 연인에게 편지도 수없이 써서 보냈다. 문학관 내에 재현한 서재가 커피와 클래식 음악, 영화를 즐기는 ‘모던 보이’ 이효석을 알려 준다. 그런 그가 글에서 정착한 곳은 고향 풍경, 자연이었다. 한국 문학 사상 가장 아름다운 문장, 가장 완벽한 구조와 서사를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작품 ‘메밀꽃 필 무렵’을 스물아홉에 발표한다.

흔한 꽃, 매일 뜨는 달에 평범한 장돌뱅이와 지친 나귀. 여기에 우연한 동행자가 더해진다. 사실 어디서건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기에, 우연 자체가 삶이기도 하다. 장돌뱅이는 동행 앞에서 옛 기억을 꺼낸다. 여름을 닮은 청춘 시절, 사랑을 닮은 달밤의 인연. 허름한 인생길에 추억은 평생의 식량이고 연료가 되었다.
소설이 탄생한 무대에서 아름다운 글을 생각하고, 나의 추억 또한 떠올린다. 어제오늘에만 매달렸던 시야가 기억을 더듬다 몇 가지 이미지를 건져 올린다. 낭만적인 달 같은 이야기, 소박해도 예쁜 메밀꽃 같은 장면이다. 효석달빛언덕을 산책하면서 상념을 이어 간다. 생가를 재현한 초가, 평양 시절을 보여 주는 집, 달 조형물, 나귀 형상 전망대 등이 경사 따라 들어서 걸음이 즐겁다. 평창과 평양, 36년 짧은 생애를 살다 가신 선생도 길에서 긴 시간을 보내셨구나 했다. 생애 어느 날의 달이 선생을 사로잡아 영원한 문장으로 남았으니 오늘 나의 달도 그럴지 모른다.

해가 짧아 어느새 어둑해진다. 굳건한 강원도의 산 사이사이 자리 잡은 집들에 불이 켜진다. 그 안에는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 꿈을 꾸고 있겠지. 하루 여행하고는 고향처럼 여길 마을 두 곳을 얻었다. 곧 “숨이 막힐 지경”으로 흐뭇한 달빛이 마을에 내릴 것이다.


로컬100 여행이란 그곳에만 있는, 그곳이 아니라면 보고 느끼고 체험하지 못할 무언가를 만나러 가는 것.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고 지역문화진흥원이 진행하는 ‘로컬100’은 지역의 고유한 여행지, 축제, 명사 등 100가지 문화 자원을 발굴해 지원하고 널리 알리는 사업이다. 강릉에서는 시나미 명주 골목‧강릉단오제‧강릉커피축제가, 평창에서는 이효석‧계촌클래식이 이름을 올렸다.
문의 02-262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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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현정
photographer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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