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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강가에 서서

시인의 문장과 시어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신비로운 영상 위로 휘몰아친다. 전남 광양 전남도립미술관 <시의 정원>전 문을 열어젖히는 작품 ‘스틱스 심포니’의 안유리 작가와 공감각적 대화를 나눴다.

UpdatedOn March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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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리, ‘스틱스 심포니’, 2채널 영상 설치, 15분 51초, 2022 ⓒ 김상태

안유리, ‘스틱스 심포니’, 2채널 영상 설치, 15분 51초, 2022 ⓒ 김상태

  • 안유리, ‘스틱스 심포니’, 2채널 영상 설치, 15분 51초, 2022 ⓒ 김상태안유리, ‘스틱스 심포니’, 2채널 영상 설치, 15분 51초, 2022 ⓒ 김상태
  • 안유리, ‘스틱스 심포니’, 2채널 영상 설치, 15분 51초, 2022 ⓒ 김상태안유리, ‘스틱스 심포니’, 2채널 영상 설치, 15분 51초, 2022 ⓒ 김상태

Q. 남도 문학 또는 남도 문인에게서 영감을 받은 동시대 미술 작품을 모은 전시 <시의 정원>에 ‘스틱스 심포니’로 참여하셨습니다. 감회가 궁금합니다.
A.
국내외 곳곳을 오가며 작업과 연구를 이어가던 제게 팬데믹은 한때 붙들고 가까이 두었던 것을 돌아보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작은 방에서 시집을 펼쳐 들고 오래전 좋아했던 문장, 여전히 내게 소리치는 단어에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을 보냈죠. 그렇게 조금씩 다시 읽고 쓰면서 생각을 거듭하던 중 지난해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아트스펙트럼 2022>에 초대되어 ‘스틱스 심포니’를 처음 선보였습니다. 작업에 몰두하던 2021년은 마침 ‘스틱스 심포니’ 제4악장에 등장하는 고정희 시인이 타계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이기에, 시인에 대해 다시금 여러 사람과 함께 사유하고 이야기 나눌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시의 정원>전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땐 전남 해남 출신인 고정희 시인의 문학적 원류에서 작업을 선보일 기회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Q. 전시 개막일에 인상적인 만남을 경험하셨다고요.
A.
관람객 한 분이 제게 오시더니, 자신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장에 있었던 사람이며, 1978년도에 광주에서 고정희 시인과 잠시나마 활동을 함께 한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스틱스 심포니’에 담긴 이야기와 소리, 이미지에 대해 누구보다 풍부한 해석과 감상도 들려주셨죠. 작가인 제게 전시 오프닝은 늘 긴장되고 초조한 일이지만, 응당 만나야 할 인연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더군요. 오프닝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KTX 안에서 그 만남을 한동안 곱씹었습니다.

Q. ‘스틱스 심포니’에는 고정희 시인을 포함해 정치적∙역사적 아픔을 몸과 마음에 새긴 여성 시인의 시가 등장합니다. 시인의 존재감과 시어가 곧 스틱스(저승의 강, 또는 그 강의 여신)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왜 네 사람의 시여야 했을까요.
A.
전 고정희 시인을 통해 여성의 언어와 글쓰기, 시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필두로 여러 여성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다양한 세계와 언어의 가능성을 발견했지요. 무엇보다 소수자와 약자, 변방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인 구리하라 사다코, 나치와 전체주의를 경험한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흑인 인권운동가 마이아 앤절로, 5∙18민주화운동을 겪어 낸 고정희까지.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네 시인은 시어에 증언과 고발의 메시지를 담고,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Q. 작업의 소재로 시와 영상을 다루는 연유는 무엇인가요.
A.
저는 보통 텍스트로 스케치를 시작합니다. 떠오르는 단어 혹은 문장을 적어 내려가다가 그것을 소리 내 읽어 보면 예기치 못한 이미지와 사운드가 떠오르곤 했죠. 그건 마치 하나의 직물을 짜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텍스트와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고 횡단하면서 작업이 시작된달까요. ‘스틱스 심포니’의 경우 텍스트로 이루어진 시어가 소리와 이미지로 옮겨 가는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했던 역사적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재 관점에서 다시 불러내는 일을 상상했습니다. 여기에 4악장의 구성을 지닌 심포니 형식을 빌려 와 구조를 완성해 텍스트, 사운드, 이미지라는 세 요소를 공감각적으로 체험하도록 했죠.

Q. 가로 길이가 긴 2채널 영상 작업 ‘스틱스 심포니’는 언뜻 열차의 창가 풍경과도 비슷하게 다가옵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기차 여행의 순간이 있나요?
A.
상대성이론에 대해 알아보다 막막한 마음에 독일 포츠담의 천체물리학 관측소 아인슈타인투엄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살았는데, 경비를 아끼고 여행도 할 겸 일곱 시간에 걸쳐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차창 너머 달려들고 밀려 나가는 풍경을 맞닥뜨리면서 자연스레 상대성이론의 ‘기차 실험’이 떠올라 곧장 그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했죠. 훗날 이 촬영본은 동명의 이론을 빌려 와 ‘동시성의 상대성’이란 단채널 영상 작업으로 완성했습니다. 기차라는 공간이 물리적 감각을 혼동에 빠트리며 풍경의 이중적 속도를 감각하게 했고, 뜻밖의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Q. 작가님의 다음 여정이 궁금합니다.
A.
최근 자주 하는 질문은 ‘인간은 왜 이렇게 나와 다른 존재를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일까?’입니다. 국적, 인종, 계급 등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모색해 온 제 오랜 물음표와 궤를 같이하죠. 현재는 이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는 중인데, 올해 안에 조금은 진척된 작업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포에트리 위버(poetry weaver)’로서, 이미지와 텍스트와 사운드를 직조하는 자로서 영상 매체를 활용해 보다 자유롭게 메시지와 감정을 재생하려 합니다. 지워지거나 이름 없이 사라진 목소리들을 지금 여기로 불러내어 우리와 연결시키는 일이기도 하지요.

안유리 작가가 기차 여행자에게 추천하는 시와 음악

“몸이 떠나거나 마음이 움직이는 상황을 그린 시, 그리고 기차에서 자주 듣는 음악입니다.”
시 빙하기의 역’, 허수경 

시 땅의 사람들 14–남도행’, 고정희

 ‘양의 서쪽’, 김선재

음악 ‘Universal Traveler’, 에어(Air)

안유리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난 안유리는 텍스트와 이미지, 시간과 공간, 지역과 문화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미술가다. 시와 영상을 중첩하거나 병치하는 작업 방식이 기묘한 감흥을 자아낸다. 그는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어쩌면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곳’에 수많은 사람과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의 작품 ‘스틱스 심포니’는 전남 광양 전남도립미술관 <시의 정원>전에서 6월 4일까지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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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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