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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가는 길, 산과 나의 풍경

김동진 사진가는 기다린다. 마침내 자신이 산이 될 때까지.

UpdatedOn January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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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에서 눈 덮인 바위를 만났다. 구름이 자욱해 햇살은 옅고 가늘었다. 문득 시선 가운데로 햇살이 들어왔다. 조금 더 밝아진 빛은 바위 뒤에서 광배처럼 번졌다. 눈이 계속 비탈을 덮어 가는 중이었다. 김동진 작가는 보았다. 바위는 산을 오르는 자신이었다. 머릿속 잡념들이 무거울지언정 길을 밟고, 다시 밟아 나아가는 사람의 경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산과 빛의 찰나를 포착한 작품 ‘자화상’이다.

1923년,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 하느냐는 질문에 조지 말로리는 “그곳에 산이 있어서”라고 대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는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등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전인미답의 최고봉이 목표이기에 이상과 정신 또한 고도했겠다. 그래서 그 대답은 숱한 이유를 잘라 함축한 것이거나, 홀로 간직하겠다는 다짐을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 어떤 생각이었든 그는 언어에 넣기가 불가한 순간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꼭 100년이 지난 오늘도 사람은 산을 오르려 한다. 김동진 작가 역시 매주 20킬로그램에 이르는 짐을 지고 설악산으로 향한다.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마음은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어요. 오르는 동안 산에서 나를 보니까요. 내가 거기로 가는 과정이 아니라 산이 나에게 다가오는 과정이죠.”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마음은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어요.
내가 산으로 가는 과정이 아니라
산이 나에게 다가오는 과정이죠.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사진집 <천 개의 마음> <천의 바람>을 펴냈지만 본업은 지금도 대학교 교직원이다. 인연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궤적이다. 작가는 2009년 무렵 홍보 부서에서 일했다. 직접 자료 사진을 찍기도 하던 당시 갑작스레 건강이 악화되었다. 좀처럼 호전되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산이 떠올랐다. “이른 봄날 서울 인왕산에 갔어요. 낮게 깔린 구름과 봉우리의 조화가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건강을 챙길 겸, 산 사진을 찍어 보자 결정했죠.” 밤에 설악산 천불동계곡을 산행했다. 아무리 걸어도 비탈이 계속됐다. 힘들어지는 만큼 온갖 감정이 부풀어 커졌다. 후회, 두려움, 슬픔은 천 가지 마음으로 변화해 자신을 세차게 두드렸다.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묘한 일이 일어났다. 계곡을 지나자 마음이 하나둘 흩어졌다. 이윽고 먼지를 모두 벗은 맨눈으로 산을 봤다. 능선과 나무가 가슴에 온전하게 깃들었다. 세상은 본디 하얀 것이었다. “이후 거의 매주 설악산을 방문해서 촬영했어요. 그 사진을 모아 2019년에 발간한 책이 <천 개의 마음>이고요. 그날 경험을 통해 사진집 이름을 결정했죠.”

밤이어도 산에는 분명하게 움직임이 존재한다. 주로 야간에 산행하는 작가는 별빛과 은하수, 운무와 나뭇가지의 흔들림을 관찰하고 기다린다. 바로 지금 풍경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겠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는 나를 닮은 풍경이 반드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마저 정해진 건 아니다. 어제 일상에, 산에 닿는 여정에, 능선을 타는 순간에 스치는 감정이 나와 산의 거리를 벌리고 좁힌다. 그리하여 작가는 기다린다. 어둠에 휩싸인 산을 헤매며 미세한 움직임에 귀를 기울인다. 운무에 젖은 건너편 능선이나 은하수가 가로지르는 밤하늘에서 소리가 들리고, 작가는 셔터를 누른다. 찰칵. 마음이 내는 목소리가 사진 한 장에 담긴다. “열 번 가서 두세 번 제대로 촬영해요. 이거다 싶은 때가 쉽게 오는 게 아니어서요. 아무것도 못 하고 돌아오기도 하죠.” 작가는 사진 작업을 덜어 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불필요한 피사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앵글 바깥으로 물리치는 작업은 결코 기법이 아니다. 욕심을 확인하고 삶에서 물리쳐야 비로소 마음의 소리가 들릴 테니. 설령 그냥 돌아가야 한대도 그는 눈 덮인 비탈의 바위처럼 길을 밟고, 다시 밟아 나아갈 것이다.

인사하고 헤어지려는 참에 작가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번 주말에도 설악산에 갑니다. 폭포가 얼었을 거예요. 겨울이 깊어질수록 얼음 폭이 넓어지죠. 그 모습을 촬영하려고요.”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얼어 자신을 확장해 가는 밤, 그렇게 마음 하나가 환하고 깊게.

김동진

김동진

서울 서강대학교 교직원이면서 사진작가로 활동한다. 우연한 계기에 산과 사진의 매력에 빠진 2009년 무렵부터 거의 매주 산을 촬영했다. 2019년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해 사진집 <천 개의 마음>을 펴냈다. 지난해 12월에는 설악산을 중심으로 수년간 작업한 작품 69점을 모아 사진집 <천의 바람>을 발간했다. 끈질기게 탐구하고 진실하게 다가가 포착한 산 사진에 우찬제 문학평론가가 글을 붙여 독자를 사색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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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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