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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우주, 펀자이씨툰

15만 팔로워를 사로잡은 인스타툰, <펀자이씨툰>의 엄유진 작가에게 말을 걸었다. 일상이라는 축복, 기쁨과 슬픔의 균형, 관계의 애틋함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UpdatedOn October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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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유진

ⓒ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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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유진

축하드려요. ‘선천적 부끄럼쟁이’를 자처하던 소녀가 어느덧 팔로워를 15만이나 모으고, 단행본 <펀자이씨툰 1: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펀자이씨툰 2: 외계에서 온 펀자이씨>(이하 <펀자이씨툰>)를 동시 출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습니다.
일상과 관계를 다룬 그림 에세이라 많은 독자님께 닿을 수 있었나 봐요. 하루하루 짧게나마 남겨 온 생활의 흔적이 4년 남짓 쌓여 책으로 엮었는데, 이야기의 힘을 새삼 실감합니다. 소소하고 사적인 서사가 이렇게나 큰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얼떨떨하면서도, 글과 그림을 자유로이 펼칠 무대를 확보해 기쁩니다.

섬광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발견하고, 기록하고, 글과 그림으로 옮기는 과정이 신비롭게 느껴져요.
행복한 일, 특별한 일을 제외한 일상이 지루하고 평범하게만 보였다면 <펀자이씨툰>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저는 우리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성장과 쇠퇴, 만남과 이별, 반복적인 갈등과 사건 속에서 감정의 균형을 잡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곤 합니다. 무엇보다 제 작업의 원천은 애정 그 자체라, 좋아하는 것들을 오래 관찰하고 묘사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껴요.

과연 <펀자이씨툰>에는 애틋한 가족, 매력적인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인간관계를 담아내는 일에 어떤 어려움과 보람이 따르나요?
아끼는 이들을 그리다 보니 아프고 민감한 부분을 적나라하게 다루기 어려울 때도 많은데, 그럼에도 다양한 관계에서 배어 나오는 웃음과 다정함을 포착하고 그리는 일이 즐겁습니다. 한국인 아내와 태국인 남편, 철학자 아빠와 소설가 엄마, 할아버지와 손녀, 엄마와 딸,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와 기억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손녀···. 모두가 함께 부대끼는 동안 아기는 소녀로 성장하고, 엄마는 할머니로 늙어 가고, 아기처럼 돌봄이 필요한 약자가 돼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이야기는 계속될 거예요.

기억을 잃어 가는 엄마의 모습을 담은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시리즈가 많은 이의 마음을 울렸죠. <행복한 철학자>의 저자이기도 한 엄마, 우애령 선생님은 작가님께 어떤 존재인가요.
엄마는 저를 끊임없이 웃게 하는 분이에요. 사춘기엔 삐딱한 캐릭터가 멋져 보이기 마련인데, 정의로운 사람이 매력적이라는 걸 일깨운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도 하죠. 호기심과 장난기가 많은 엄마는 제가 하는 말에 늘 연달아 물음표를 던지고, 느낌표를 끌어냅니다. 엄마의 첫 에세이에 제가 삽화를 그린 후 우리는 자연스레 함께 작업하는 사이가 됐어요. 밤샘 작업에 지쳐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찬사를 보내는 순간이 얼마나 설레던지요. 엄마의 모든 책을 사랑하지만, 그중 절판된 <행복한 철학자>는 엄마가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이 잘 드러나는 책이라 언제고 꼭 다시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좋아하는 예술가, 영감을 얻는 예술가가 있나요?
장 자크 상페와 생텍쥐페리를 사랑해요. 사색과 직관을 오가는 단순한 이야기 속에 삶에 대한 통찰을 녹여 내잖아요. 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보다는 자신만의 철학, 위트, 통찰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예술가가 좋아요. 무한한 호기심, 따스한 인간애를 간직한 이들이 제게 영감을 안깁니다.

연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시물을 꼽는다면요?
모호한 감정을 글과 그림으로 선명하게 표현할 때 좋은 반응을 얻곤 했어요. 슬픈 상황임에도 미소 짓게 된다거나, 예기치 못하게 눈물이 났다는 댓글을 볼 때면 반갑습니다. <펀자이씨툰> 1권에 수록한 ‘슬픔이 차오를 때’는 각별히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었어요.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겉으론 괜찮은 척하지만 푸른빛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사람입니다. 누군가 그를 말없이 껴안아 주니, 몸 안에 담아 둔 슬픔(눈물)을 쏟아 내지요.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유독 애착이 가는 이야기도 있어요. 기억을 잃어 가는 엄마, 부쩍 성장한 딸아이와 같은 나이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에피소드입니다. 복합적인 감정과 이야기를 단출한 연필 선에 실었던, 가장 펀자이씨툰다운 게시물 중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연필의 질감과 필치가 이야기에 온기를 더하고, 상상력을 확장합니다. 심지어는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린 흔적마저 마음을 뭉클하게 해요. 손으로 눌러 썼다는 게 실감 나거든요.
육아와 가사로 이루어진 생활의 리듬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한정된 필기구만 써요. 그중 연필은 자유자재로 그림과 글을 오갈 수 있는 간편한 도구라 애용합니다. 이왕 연필로 그리기 시작했으니, 연필만이 간직한 느낌을 살리려 했어요. 다만, 썼다 지운 흔적을 보면서 그 자리에 닿아 있던 사람의 자취를 느낀다는 독자 반응은 한참 후에야 확인했습니다. 문득 연필로 그린 제 그림이 좋다던 조카의 말이 떠오르네요. 언제든 실수를 완벽하게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리는 것, 한번 그렸다 지운 자리에 흔적이 남는다고 생각하며 그리는 것은 마음가짐부터 다르지 않겠느냐고요.

인스타툰을 책으로 옮기는 도전을 했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해요.
모바일 화면보다 넓은 공간에서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업이라 집중력이 필요했습니다. 즉흥적으로 연재한 크고 작은 이야기를 일관된 흐름으로 묶는 일이 까다로웠어요. 연재 게시물과 달리 책을 엮는 긴 시간 동안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낯설더라고요. <펀자이씨툰> 1권은 책이라는 소재의 특성을 고려해 지면을 구성했고, 2권은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톡톡 튀는 대사를 살리는 데 주력했는데, 곧 나올 3권에서는 ‘시간 개념과 기억’이라는 테마로 보다 실험적인 시도를 해 볼 생각입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여전히 많아서, 적당한 창구가 있다면 독자와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도 싶어요. 이렇게 수줍은 성격인데, 무언가를 끝없이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죠.
 

 + 엄유진 작가의 기차 여행 
“창밖을 넋 놓고 바라보는 여유, 간이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우연히 맞닥뜨린 낯설고 색다른 풍경, 고단한 얼굴을 비추던 어두운 밤의 유리창, 이따금 찾아드는 방황과 매혹의 순간. 기차는 언제나 제게 매력적인 교통수단이에요. 그간 기차에서 마주친 사람, 듣던 소리, 느낀 모든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종이 위에 이어 그리면 어떨까 상상합니다. 꼭 기차처럼요.”

엄유진

엄유진

@punj_toon 연필 한 자루로 삶을 그리고 쓰는 사람. 도서 <행복한 철학자> <사랑의 선택> <숲으로 가는 사람들> 등에 삽화를 그리고 영국에서 여러 권의 그림책을 출간했다. 인스타그램에 <펀자이씨툰>을 연재 중이며, TEDx 강연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를 선보여 큰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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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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