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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맑은 영주 소백산 자락길

소백산에 안긴 경북 영주로 떠났다. 철길, 숲길, 물길 따라 걷고, 쉬고, 콧노래를 불렀다.

UpdatedOn May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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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폐역이 된 희방사역은 풍기읍 수철리 무쇠달마을의 관문이다. 수철리는 과거 수철교리였고, 수철교를 풀어 쓰면 무쇠 다리다. 희방폭포에서 수행하던 두운대사가 한 여인을 호랑이로부터 구했는데, 여인의 부친이 고마움을 표하고자 무쇠 다리를 놓고 희방사를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2020년 폐역이 된 희방사역은 풍기읍 수철리 무쇠달마을의 관문이다. 수철리는 과거 수철교리였고, 수철교를 풀어 쓰면 무쇠 다리다. 희방폭포에서 수행하던 두운대사가 한 여인을 호랑이로부터 구했는데, 여인의 부친이 고마움을 표하고자 무쇠 다리를 놓고 희방사를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01 죽령옛길, 철길과 무쇠달마을의 삶

갓 세수한 듯 말갛게 갠 하늘 아래 희방사역이 있다. 바지런한 손길로 매만진 까닭에 곱고 단정하게 낡았다. 1942년 중앙선 간이역으로 문을 연 이곳은 1951년 보통역으로 승격되었고, 개역 78년이 지난 2020년 12월 중앙선 복선화 사업으로 영업을 중단해 폐역이 됐다. 녹슨 철길 틈에 노랗게 피어난 애기똥풀과 씀바귀를 헤치며 한 발씩 디딘다. 폐선로에 레일바이크를 놓는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오늘도 희방사역을 맴도는 건 소백산에서 밀려온 싱그러운 숲 내음뿐이다. 승강장 한편에 집 짓고 사는 검둥개 희방이와 흰둥이 수철이가 이따금 적요를 깨뜨린다. 희방이는 소백산 기슭의 사찰 희방사에서, 수철이는 마을 지명인 풍기읍 수철리에서 딴 이름인데, 기분이 퍽 화창한 모양인지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왕왕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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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영주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영주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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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백산 자락길에 올라야 하는 이유

흔들 꼬리가 없다면 두 팔을 휘적이며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밖에. “야생초 곱게 피면 맑은 물 계곡을 따라/ 님과 함께 어화둥둥 사랑을 노래하리/ 내 사랑 소백산아···”. 가수 주현미의 ‘소백산’을 따라 부르다, 비로봉이 어디께 솟았을까 짐작해 봤다. 이쯤, 아니 저쯤이려나. 담묵빛 소백산 능선이 손에 닿을 듯 아물거렸다.

소백. 녹음이 짙어질 때 생각나는 이름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드나들어 걷기 좋은 이 계절, 143킬로미터 소백산 자락길에 첫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이번 여정의 시작점은 3자락길 중 한 구간인 죽령옛길이다. 희방사역에서 출발해 느티쟁이 주막 터를 거쳐 죽령마루에 이르는 2.8킬로미터 코스다. 죽령은 경북 영주 땅에서 충북 단양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삼국시대부터 수많은 이가 오르내리며 영남을 대표하는 길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죽죽이라는 옛 사람이 길을 처음 닦았다는 기록부터 2톤에 달하는 오대산 상원사 동종이 마차에 실려 이 고개를 지났다는 설화, 풍기군수였던 퇴계 이황이 넷째 형이자 충청감사를 지내던 온계 이해를 마중하고 배웅하던 촉령대 일화까지. 발 닿는 곳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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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700미터 지점에 위치한 희방폭포는 소백산 연화봉에서 발원한다. 물줄기가 28미터 높이의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데, 낙차가 큰 만큼 우렁찬 물소리로 골짜기를 울린다. 예부터 영남 제일의 폭포로 이름 높다.

해발 700미터 지점에 위치한 희방폭포는 소백산 연화봉에서 발원한다. 물줄기가 28미터 높이의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데, 낙차가 큰 만큼 우렁찬 물소리로 골짜기를 울린다. 예부터 영남 제일의 폭포로 이름 높다.

죽령옛길을 소백산 자락길 여행의 들머리로 삼은 건 산골 마을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싶어서다. 역사 한편에 자리한 ‘무쇠달다방’의 주인이자 무쇠달협동조합을 이끄는 여광웅 대표는 마을 생태계를 보존하고자 온갖 수고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승객의 발길이 끊긴 역을 살뜰히 관리하는 것은 물론, 주말마다 수공예품과 먹거리를 파는 벼룩시장을 연다. 여 대표가 직접 마을의 역사와 문화와 풍속을 담아 제작한 출판물도 함께 놓았다. 조합에서 운영하던 ‘무쇠달마을식당’은 팬데믹 여파로 끝내 문을 닫아야 했지만, 그는 지금도 무쇠달다방에서 커피를 내리며 마을의 중흥을 기약한다.  

“저기 보이는 철길 끄트머리까지 걸으면 터널에 다다릅니다. 죽령터널과 이 철길은 일제가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서 건설한 거예요. 1923년에 계획을 세웠다고 하니 그로부터 꼭 100년이 됐네요. 더 많은 이가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도록 온전하게 보존했으면 합니다.” 그의 말이 희망으로 이어지기를, 그리하여 희방사역과 무쇠달마을을 지켜 내기를 온 마음으로 바랐다.

수철리를 떠나기 전 놓쳐선 안 될 비경이 하나 있다. 희방폭포다. 죽령로를 벗어나 산자락 깊숙이 들어서자 시원스러운 물소리와 가까워진다. 조금 더 산길을 밟아 나가면 천둥처럼 쏟아져 내리는 28미터 높이의 거대한 물줄기 앞에 닿는다. 눈앞이 아득해진다. 조선의 문장가 서거정 선생은 이 폭포를 두고 ‘천혜몽유처(天惠夢遊處)’라 했다. 과연 하늘이 내린, 꿈같은 풍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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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달밭길, 비로봉 남쪽 기슭의 은신처

소백산 자락길이 품은 또 다른 마을로 간다. 이름은 달밭골. 비로봉 아래 달빛이 닿는 첫 번째 마을이란 뜻이다. 소백산 1자락길의 소자락길 중 하나인 달밭길은 이 촌락을 중심으로 삼가주차장과 초암사를 잇는 구간이다. 삼가주차장의 ‘삼가’는 풍기읍 삼가리에서 왔다. 소백산을 찾는 산꾼들에겐 비로봉에 이르는 비교적 수월한 등산로인 ‘삼가동 코스’로 익숙한 지명이다. 풍기역에서 비로봉 방향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삼가로를 타야 하는데, 이 도로가 달밭길 구간과 일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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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자락길을 오래도록 누리려면 자락꾼 예절을 잘 지켜야 한다. 특히 자락길이 농장이나 과수원을 끼고 이어진 경우가 많으므로 작물을 훼손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문의 www.sanjarak.or.kr

소백산 자락길을 오래도록 누리려면 자락꾼 예절을 잘 지켜야 한다. 특히 자락길이 농장이나 과수원을 끼고 이어진 경우가 많으므로 작물을 훼손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문의 www.sanjarak.or.kr

숲 그늘 아래 드러누워 삶을 살필 때

달밭길 중턱에 드넓게 펼쳐진 잣나무숲 명상쉼터는 소백 자락이 숨겨 둔 황홀한 은신처다. 빽빽하게 자라난 잣나무 사이에 펼쳐진 선베드가 지친 몸을 뉘라고 손짓한다. 거스를 도리가 없는 유혹이다.

가만히 등을 대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닥다닥 붙어 선 나무이건만, 가지와 잎이 서로 엉기거나 붙지 아니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자라나 있다. 이 신비로운 현상을 ‘크라운 샤이니스’라고 한다. 덩굴 종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무가 마치 부끄러움을 타듯 적당한 여백을 유지한 채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경쟁과 질투와 혐오 속에서 갈팡질팡 흔들려 온 삶이 문득 덧없다. 잣나무에서 비우고 덜어 내는 법을 배우니, 명상의 힘이 이렇게나 대단하다. 나무 향내가 섞인 달콤한 공기를 명치께까지 깊이 빨아들여 본다. 순식간에 온몸이 푸르러진다.

비로사는 이 길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이정표다. 683년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진공대사가 중창한 고찰로, 처음 지었을 당시에는 소백산사라는 이름이었으나 의상대사가 비로사로 바꿔 불렀다는 설도 전한다. 계단식 구조를 갖춘 산사의 전형이지만, 유구한 세월을 지나며 전각이 스러진 까닭에 적광전과 나한전, 삼성각과 망월당, 월명루와 범종각, 보연당과 염불당 등 1990년대 이후 새로 지은 10여 개 당우로 규모가 단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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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기슭의 작은 절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비로사의 내력을 알려 주는 진공대 사보법탑비도 그중 하나다. 고려 태조는 소백산에서 수도하던 승려에게 법문을 청하고 설법을 듣곤 했는데, 그가 입적하자 진공대사라는 시호와 보법이라는 탑호를 내리고 탑비를 세웠다. 탑비는 비로사를 다시 지은 것이 진공대사라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본전인 적광전에는 석조아미타여래좌상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모셨다. 두 불상을 한데 봉안한 것이 이채로운 데다 통일신라 시대 석불이 간직한 단아함이 엿보여 시선을 떼기가 어렵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에서 단단하고 넓은 어깨로 이어지는 곡선, 몸을 가볍게 감싼 듯한 옷의 주름, 섬세하면서도 안정적인 손 모양까지. 눈 닿는 곳마다 유려하지 않은 구석이 없으니, 절로 불심이 솟고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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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밭길은 비로봉 아래 첫 마을을 가로지르는 구간이다. 풍경이 근사하고 비로사와 초암사 등 볼거리가 많아 하루 묵어 가기에 그만이다.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가 운영하는 삼가야영장은 국립공원공단 예약 시스템을 이용해 예약하면 편리하다. 문의 054-637-3794 reservation.knps.or.kr

달밭길은 비로봉 아래 첫 마을을 가로지르는 구간이다. 풍경이 근사하고 비로사와 초암사 등 볼거리가 많아 하루 묵어 가기에 그만이다.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가 운영하는 삼가야영장은 국립공원공단 예약 시스템을 이용해 예약하면 편리하다. 문의 054-637-3794 reservation.knps.or.kr

깊고 푸른 소백산의 밤, 삼가야영장

낮이 긴 여름이라 해도 소백산 골짜기엔 어둠이 금세 찾아든다. 여장을 풀고 편안히 쉴 곳을 물색하는 걷기꾼에겐 삼가야영장만큼 적당한 숙소도 없다. 차갑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무수한 별을 헤아리는 캠프의 서정이 그곳에 있다.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가 정갈하게 관리한 하우스형 솔막 여섯 동과 텐트형 산막 스무 동, 자동차 야영장 열아홉 동 중 취향에 맞는 숙소를 골라 마음 편히 잠을 청해 본다. 달밭길 초입인 삼가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소백산 자락길 탐방 경유지로도 더할 나위 없는 베이스캠프다. 야영장의 밤, 하늘은 점차 깊어지고 여정은 무르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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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암사 근처 1곡부터 삼괴정 부근 9곡에 이르는 유려한 물길을 일컬어 죽계구곡이라 한다. 높이가 낮은 폭포인 와폭으로 이어져 굳건하고 호방한 기운이 느껴진다. 퇴계 이황이 모든 굽이에 이름을 붙였다.

초암사 근처 1곡부터 삼괴정 부근 9곡에 이르는 유려한 물길을 일컬어 죽계구곡이라 한다. 높이가 낮은 폭포인 와폭으로 이어져 굳건하고 호방한 기운이 느껴진다. 퇴계 이황이 모든 굽이에 이름을 붙였다.

03 구곡길과 선비길, 맑은 물에 씻는 마음

소백산 1자락길의 남은 두 구간을 걸을 차례다.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구곡길로, 초암사와 삼괴정을 잇는 코스다. 하이라이트는 죽계구곡이다. 국망봉에서 산기슭을 따라 굽이치는 약 2킬로미터 길이의 물길을 두고 문장가 안축은 ‘죽계별곡’을 지어 불렀으며, 퇴계 이황은 아홉 굽이를 손수 헤아려 별명을 붙이고 서각할 만큼 사랑해 마지않았다.

오늘날 구곡의 이름은 퇴계가 명명한 것을 그대로 따르지만, 굽이 하나하나에 부여한 숫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다는 설도 있다. 현재 아홉 굽이는 다음과 같다. 1곡 금당반석, 2곡 청운대, 3곡 척수대, 4곡 용추비폭, 5곡 청련동애, 6곡 목욕담, 7곡 탁영담, 8곡 관란대, 9곡 이화동. 헤아리는 것만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목덜미가 시원해지니 신선이든 선녀든 이무기든 누구든 흥청망청 노닐기엔 아까울 만큼 맑고 투명한 풍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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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에 발맞추어 한 걸음 한 걸음

의상대사가 부석사 창건을 구상할 때 잠시 기거하며 수도하기 위해 만든 사찰이 바로 초암사다. 통일신라 말기에 지어 올린 3.5미터 높이의 삼층석탑을 감상했다면 숲길을 따라 조금 더 깊숙한 골짜기로 들어가 본다. 그곳에 1곡 금당반석이 있다. 콸콸 쏟아지는 와폭 한편에 조선 영조 때 순흥부사였던 신필하가 새겨 넣었다 전하는 글자 ‘一曲(일곡)’과 거대한 바위가 단숨에 눈을 사로잡는다.

1곡을 시작으로 9곡을 전부 둘러볼 때, 4곡부터 8곡까지 이어지는 세차고 활달한 물길 앞에서 걸음이 조금 더 느려지곤 했다. 맑은 물에 갓끈을 씻고 발을 담갔을 선비들의 피서 풍경을 머릿속에 상상하거나, 묵은 시름을 애써 닦아 내느라 그랬을 것이다.

구곡길이 끝나는 곳에서 선비길이 뻗어 간다. 삼괴정에서 순흥저수지를 지나 선비촌에 다다르는 경로이자, 죽계천 물길을 따라 난 길이다. 소수서원 남쪽에 자리한 취한대는 오롯이 죽계천을 관망하려고 만든 공간이다. 사방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경자바위 주변에 흙과 돌을 도탑게 쌓아 올리고 주변을 소나무, 잣나무, 대나무로 가꿔 완벽한 구도의 살아 있는 산수화를 완성했다. 서원에서 글 읽던 선비들은 지치면 취한대로 나와 시를 노래하며 풍류를 즐겼을 테다. 이런 정경을 옆에 끼고서 부와 명예에 집착하는 건 헛된 일 아닌가. 학문에만 마음을 쏟는 고매한 선비 정신이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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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입구 쪽에 자리한 취한대는 죽계천 물길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다. 취한이란 단어는 ‘연화산의 푸른 기운과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라는 뜻의 ‘송취한계’에서 따 왔다. 문의 054-639-5852

소수서원 입구 쪽에 자리한 취한대는 죽계천 물길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다. 취한이란 단어는 ‘연화산의 푸른 기운과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라는 뜻의 ‘송취한계’에서 따 왔다. 문의 054-639-5852

해가 주홍빛으로 저물어 가는 즈음 순흥저수지로 간다. 죽계천을 유입해 만든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송림호다. 1986년 3월 착공해 1996년 9월 완공했으니 축조하는 데 10년이 걸린 셈이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했다고는 하지만 저수지 둘레에 나무 덱을 놓아 산책하기에도 더없이 좋다. 일몰과 동시에 불 밝히는 경관 조명도 설치해 밤 산책의 즐거움을 더한다.

불그스름하던 하늘이 군청색으로 짙어지자 별안간 수십, 아니 수백 마리 개구리가 목 놓아 울기 시작한다. 여기 살아 있다고, 보란 듯 소리치는 울음이다. 잔잔하던 수면도 파르르 떨린다. 물 안에 가만히 잠긴 나무마저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울음이야말로 마음을, 응어리와 슬픔을 씻어 내는 일일 터. 언젠가 울고 싶은 날이면 다시 이곳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웃고 싶은 날에도, 누군가 그리운 날에도, 그 어떤 날에도 소백 자락은 우리를 기꺼이 끌어안을 것이다.

<KTX매거진>×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

<KTX매거진>×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

경북 영주에 다녀온 <KTX매거진>이 MBC 표준FM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통해 독자, 청취자 여러분과 만납니다. 기자의 생생한 목소리로 취재 뒷이야기, 지면에 미처 소개하지 못한 여행 정보를 함께 들려 드립니다.
* 6월 3일 오전 6시 5분(수도권 95.9MHz)
* QR코드를 스캔하면 방송을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Deep In the Valley of Sobaeksan Mountain

I set off to Yeongju in Gyeongsangbuk-do Province, nestled in Sobaeksan Mountain. I walked along
the railway, forest trails and streams while humming to myself.

Sobaek. It’s a name that comes to mind when the green of nature thickens. This pleasant season, with cool breezes in the morning and evening, seemed like the best time to take on the 143-kilometer Sobaeksan Mountain Jarak-gil Trail. The starting point of this journey is the Old Path of Jungnyeong Pass. The 2.8-kilometer starts from the abandoned Huibangsa Station, passes Neutijaengi Tavern, and reaches Jungnyeong Maru. Jungnyeong is a mountain pass that connects Yeongju in Gyeongsangbuk-do Province to Danyang in Chungcheongbuk-do Province.

Setting Foot on the Mountain Trail

I chose the Old Path of Jungnyeong Pass as the starting point because I wanted to get a close look at life in the rural village. Yeo Gwang-ung, the owner of Moosoedal Café, located in Huibangsa Station, and the head of Moosoedal Cooperative, works tirelessly to preserve the village ecosystem. He not only watches over the abandoned station, but also organizes a flea market every weekend, selling various handicrafts and food. On one side, there is a book written by Yeo himself on the village’s history, culture and customs. While Moosoedal Restaurant, which was run by the Cooperative, had to close its doors due to the pandemic, Moosoedal Café is still open, and visitors will find Yeo brewing coffee and making beverages.

A Time to Ponder Over Life

I head to another village near the Sobaeksan Mountain Jarak-gil Trail. Its name is Dalbatgol, which means the first village where moonlight touches under Birobong Peak. Dalbatgil is a section of the trail that connects Samga Parking Lot and Choamsa Temple. The pine forest meditation area, spread out in the middle of Dalbatgil, is an enchanting hideaway on Sobaeksan Mountain. The sunbeds among the dense pine trees beckon to your weary body. It is simply irresistible. I am impressed by the power of meditation as I learn how to clear up my mind. I inhale the sweet air infused with the scent of pine, and my whole body becomes refreshed.

Walking to the Rhythm of Water

Choamsa Temple was built by Great Monk Uisang when he needed a place to stay temporarily while developing his idea for the establishment of Buseoksa Temple. After admiring the 3.5-meter-high stone pagoda built during the late Unified Silla period, take a walk along the forest trail and venture deeper into the valley. There, you will find a magnificent view of Jukgyegugok Valley. Next to the roaring waterfall is a large rock with the characters “first valley” carved by Shin Pil-ha, who was a deputy prefect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Gugok-gil leads to Seonbi-gil, a path that passes through Sunheung Reservoir and reaches Seonbichon Village, all the while following the Jukgyecheon Stream. Chwihandae Pavilion, located south of Sosuseowon Confucian Academy, was created solely for the purpose of admiring the stream. Soil and stones were piled up around Gyeongjabawi Rock, and the surrounding area was adorned with pine trees, white pine trees, and bamboo trees, completing a living landscape painting.

As the sun sets with a crimson glow, I head to Sunheng Reservoir. Another name for this place, where Jukgyecheon Stream is dammed, is Songnimho. It is also perfect for a stroll, with wooden decks placed around its perimeter. The installation of landscape lighting that illuminates the scenery at night adds to the pleasure of walking. Whenever I want to cleanse my mind, I will come back to this place. Of course, Sobaeksan Mountain will warmly embrace its visitors on any given day.

영주에서 여기도 가 보세요

  •  즐길 거리  비로 오토 파크 캠핑 & 펜션

    소백산국립공원 중턱에 자리한 캠핑장이자 펜션이다. 콸콸 쏟아지는 맑은 계곡이 바로 옆에 흐르니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여행자가 뛰놀며 쉬기 좋다. 드넓은 사이트는 A구역부터 E구역까지 다섯으로 구분한다. 쾌적하게 관리한 샤워장과 음수대, 취사장과 화장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펜션 객실 일곱 개와 단체 숙박객을 위한 복층형 객실, 별관 등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했다. 비로사는 물론이고 부석사, 소수서원, 선비촌과도 멀지 않아 영주의 주요 여행지를 두루 둘러보는 데 편리하다.
    문의 010-4804-0000

  •  즐길 거리  영주호 오토캠핑장

    영주댐을 짓고 담수 후에도 여전히 잠기지 않아 지붕처럼 솟아오른 지역을 생태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곳이 바로 영주호 용마루공원이다. 영주댐 일주도로와 자전거도로가 이곳을 휘돌아 흐르니, 자전거 라이더나 들살이를 즐기는 캠퍼라면 여기서 가까운 영주호 오토캠핑장에 여장을 풀어 본다. 특별한 장비 없이 머물 수 있는 캐러밴형 숙소와 캐빈하우스, 가족 단위 숙박객을 위한 덱 사이트, 숲속에 위치한 오토 사이트 등이 펼쳐져 있다. 놀이터와 농구장, 족구장 등 여러 가지 시설을 마련해 지루할 틈이 없다.
    문의 054-632-7400

  •  먹거리  구구리책다방

    이름도 사랑스러운 단산면 구구리. 그곳에 자리한 옛 구구리초등학교 건물이 북 카페로 변모했다. 사회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지구본과 과학 수업에 사용했을 법한 교구, 음악 수업을 떠들썩하게 했을 탬버린 등 학창 시절을 추억하게 만드는 물건이 향수를 자극한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저 좋은 재료를 사용할 뿐이라고 겸손을 내비치는 주인장은 구구리에서 수확한 딸기로 라테를 만든다. 당도 높기로 유명한 단산면 포도로 담근 잼을 바른 토스트도 맛깔스럽다. 여름엔 복숭아와 자두, 가을엔 사과로도 잼을 담근다.
    문의 054-633-9925

  •  먹거리  카페 담원

    8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문수양조장 건물이 돈가스와 차를 파는 카페테리아로 거듭나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 됐다. 한옥 골조를 살린 인테리어가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식사 메뉴는 단 하나, 담원 수제 돈가스다. 국내산 돼지고기를 얇게 저며 튀긴 까닭에 바삭바삭한 식감이 살아 있다. 참깨 소스 샐러드와 노란색 강황밥, 낙지젓이 풍미를 돋운다. 구기자, 생강, 우엉, 도라지, 국화 등 다섯 가지 재료를 넣고 우린 차를 함께 내어놓는데, 소화를 돕는 것은 물론 돈가스의 묵직한 뒷맛도 깔끔하게 잡아 준다.
    문의 054-634-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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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강은주
photographer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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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으로 온 청년들, 제주 청년몰 B1

    제주도에서 각자의 공간을 정성껏 꾸려 가는 청년 상인을 만났다. 제주도 제주 동문공설시장 지하 1층엔 몸과 마음을 녹일 온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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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의 시간을 걷다, 울주 지질 기행

    간절곶에서 타는 듯한 해돋이를 마주하고, 반구대 암각화를 바라보며 이 땅의 아득한 과거를 상상했다. 울산 울주를 두 발로 누비며 지구를 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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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 여행자의 강릉 산책

    기차를 타고 강원도 강릉으로 하루 여행을 떠난다. 로컬 공방을 들여다보고, 정성 다한 음식을 먹으며 강릉을 만드는 창작자들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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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사진 한 장

    연말을 맞아 사진가와 디자이너가 잡지에 못 실어 아까워한 사진을 꼽았다. 에디터들도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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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새재 옛길에서 듣다

    영남과 한양을 잇는 옛길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장 살아 있는 구간. 경북 문경의 새재를 걸었다. 오래된 지혜와 이야기가 길처럼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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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이 미래다

    인류는 가르치고 배우며 내일로 나아간다. 졸업 시즌을 맞아 교육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전국의 교육박물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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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호가 나타났다

    더위를 물리칠 납량 특집을 준비했다. 신비한 능력을 가진 구미호가 등장하는 드라마 촬영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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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을 향해, 충주

    중앙탑이 물가에 우뚝 선 충북 충주는 고즈넉한 자연이 무게중심을 지키는 아름다운 도시다. 우륵이 가야금을 탄 풍류가 지금도 흐르는 듯, 다양한 작품이 충주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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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스한 소리가 들리는

    한국 마지막 비둘기호가 달린 강원도 정선선. 지금도 나전역은 마음 다독이는 소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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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을 부탁해

    영사기가 스크린에 빛을 비출 때면 영혼까지 환해지곤 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영화관을 지켜 내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