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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강호에 드소, 밀양 기행

영남루와 밀양강이 그린 풍경을 지나 위양지와 만어사에 들었다. 볕 가득한 날, 경남 밀양을 바라보았다.

UpdatedOn April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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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6년 처음 지은 영남루는 거대한 규모와 시원한 전망 덕분에 예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현재 누각은 1884년 복원한 것으로 ‘밀양아리랑’ 전설이 서린 아랑각, 무봉사가 근처에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1356년 처음 지은 영남루는 거대한 규모와 시원한 전망 덕분에 예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현재 누각은 1884년 복원한 것으로 ‘밀양아리랑’ 전설이 서린 아랑각, 무봉사가 근처에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01 영남루 Yeongnamnu

밀양이라는 글자를 떠올리다가 “밀양” 하고 말해 본다. 글자가 입안을 둥글고 부드럽게 맴돈다. 밀양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마중을 나온 것은 햇볕이었다. 기차역 바닥을 노르스름하게 비추는 빛을 손에 담아 쥐었다. 따스하다. 밀양이 보여 주는 풍경도 그러했다. ‘밀양아리랑’의 이야기가 서려 흥과 풍류가 넘치는 고장, 밀양 속으로 들어간다.

흐르는 풍류와 누각

생기 넘치는 이 계절의 밀양을 두 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장소로 향한다. 마루에 오르면 널찍한 밀양강과 시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 예부터 명루라고 일컫는 영남루다. 누각은 고려 시대에 건설됐다. 1356년, 밀양 부사 김주가 신라 시대 영남사가 있던 자리에 누각을 세워 영남루라는 이름을 붙인다. 화재로 두 번이나 소실되는 고비를 겪었지만, 1884년 복원 이후 건물을 잘 보존한 덕분에 지금까지도 위풍당당하다.

대루에 들어 풍경을 굽어보니 밀양강 물결이 일렁이고 수목은 생기로 가득하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산들바람과 포르르 나는 새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밀양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문익점·이색·이황 등 영남루에 대한 글을 쓰고 풍류를 즐겼다는 문인의 기록이 한둘이 아니다. 조선 후기에는 시문 현판이 300개 넘게 걸릴 정도였다. 가장 유명한 것은 대루 안쪽에 걸린 ‘영남제일루’ 편액인데, 영남루를 복원한 밀양 부사 이인재의 아들 이정재가 열한 살 때 썼다고 한다. 영남루를 향한 애정은 시가 되어 현재까지 전한다. 고려 말에 태어난 문신 이원은 이런 시를 남겼다. “우뚝한 누각 영남 하늘에 높이 올려놓아서/ 십 리의 빼어난 경치 눈앞에 다 보이네/ 고요한 낮 여울 소리 베갯머리에 이어지고/ 해 비끼자 솔 그림자 뜰 가에 떨어진다”.

마당에서 누각을 바라보면 특이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대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날개처럼 능파각과 침류각이 놓였다. 누각 하나만 덩그러니 선 것이 아니라, 그 옆에 건물 두 채를 지어 객사 역할을 하도록 했다. 대루와 침류각을 계단인 층층각으로 연결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다락루 형식으로 지어 올린 대루와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배치한 침류각의 단차를 계단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물이 흐르는 모양을 연상시켜 여수각, 또는 하늘에서 보았을 때 ‘달 월(月)’ 자를 닮아 월랑이라는 별명으로도 부르는 층층각은 현재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을 막아 놓았다. 직접 오르지 못해 아쉽지만, 물러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건축미가 충분히 전해진다.
 

+ 제65회 밀양아리랑대축제
영남루와 밀양강 일대가 ‘아리랑’ 가락을 타고 들썩인다.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제65회 밀양아리랑대축제가 열린다. ‘밀양아리랑’ 경연 대회와 각종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기대를 모은다. 겹벚꽃이 흩날리는 날, ‘밀양아리랑’을 흥겹게 부르고 밀양만의 이야기가 담긴 창작 뮤지컬 <밀양강 오디세이>를 관람하며 흥겨운 축제를 즐기자. 문의 055-359-4500

02 위양지 Wiyangji

선인들이 영남루만큼이나 아끼던 장소가 하나 더 존재한다. 초봄에는 동백이 곳곳을 붉게 물들이고, 동백이 진 뒤엔 이팝나무가 꽃을 피운다. 얼마나 꽃이 흐드러지는지, 5월에 때아닌 눈이 내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이뿐인가, 초목이 짙어지는 여름에는 백일홍이 만발한다. 가을에는 낙엽, 겨울에는 설경이 운치를 더한다. 사시사철 다른 옷을 갈아입는 곳, 위양지다.

사랑이 담긴 저수지

백성을 위하는 못. 위양지를 그대로 풀어 쓴 것이다. 지금은 위양지라고 부르지만 이전에는 양양지라고 불렀다. 모두 백성을 위한다는 의미를 품는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통일신라 때 축조했을 거라 추정한다. 오랜 세월 동안 위양지는 그 이름처럼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화악산에서 내려온 물을 가둬 두었다가 알맞은 때에 끌어서 농사를 지었고, 제방에는 각종 나무를 심어 가꿨다. 삶이나 마찬가지인 농사에 도움을 준 저수지이니, 백성이 이곳을 아끼는 마음이야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위양지는 더 이상 저수지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인근에 가산저수지 등 크고 작은 저수지가 들어서 그들에게 일을 물려주고 은퇴했다. 그래도 위양지는 여전히 곱다. 반짝이는 윤슬, 못 가운데 섬에 세운 완재정, 우거진 수목이 힘을 모아 이곳을 가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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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지는 곱다.
반짝이는 윤슬, 못 가운데 섬에 세운 완재정,
우거진 수목이 힘을 모아 이곳을 가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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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지 둘레길은 1킬로미터 정도라 가볍게 산책하기에 알맞다. 인공 섬 가운데에 놓인 완재정 대문은 위양지 포토 존으로 소문났다. 문의 055-359-5641

위양지 둘레길은 1킬로미터 정도라 가볍게 산책하기에 알맞다. 인공 섬 가운데에 놓인 완재정 대문은 위양지 포토 존으로 소문났다. 문의 055-359-5641

둘레길은 온통 연둣빛이다. 새순이 막 돋아난 나무를 마주한다. 느티나무·버드나무·이팝나무 등 온갖 수목이 저수지를 에워싸는데, 특이하게 물가에 자라는 나무는 모두 못을 향해 몸을 굽힌 모습이다. 가지가 두 팔 벌려 저수지를 안으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단순히 볕과 물을 확보하기 좋은 곳으로 움직인 것이라지만, 상상력을 자극해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황선미 문화관광해설사가 하늘을 가리킨다. “나무가 신기하게 자라나지요? 이쪽으로 와서 위를 올려다보세요. 어때요, 하트 모양을 찾으셨나요?” 보인다. 얽힌 나뭇가지가 정말로 선명하게 하트를 그린다.

위양지에는 여기저기 사랑이 담겼다. 사람이 서로에게 기댄 모습을 닮아 ‘연인 나무’라고 부르는 나무 두 그루, 사이좋게 먹이를 찾는 원앙 한 쌍, 흙길을 밟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 무엇보다 이 저수지가 만들어진 이유도 백성을 향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몇 걸음 더 걷자 구부러져 물가에 닿은 나무 위에 올라 볕을 쬐는 남생이와 마주친다. 목을 길게 빼고 가만하더니, 기분이 좋은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닫는다. 주먹만 한 새끼 남생이도 큰 남생이를 따라 일광욕을 즐긴다.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지어지는, 사랑스러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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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 차분한 공기가 뺨을 스친다.
나뭇잎이 바람과 닿는 소리만 귓가를 은은히 울리는 고요한 만어사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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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는 만 마리 물고기가 돌이 된 절이라는 뜻이다. 대웅전 뒤에는 2010년 새긴 대형 마애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문의 055-356-2010

만어사는 만 마리 물고기가 돌이 된 절이라는 뜻이다. 대웅전 뒤에는 2010년 새긴 대형 마애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문의 055-356-2010

03 만어사 Maneosa

이제 저수지를 벗어나 만어산으로 향한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더 위로 가다가 해발 674미터에서 걸음을 멈춘다.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 차분한 공기가 뺨을 스친다. 나뭇잎이 바람과 닿는 소리만 귓가를 은은히 울리는 고요한 만어사에 닿았다.

돌이 품은 전설

<삼국유사>에 따르면 만어사는 고대 가락국의 수로왕이 창건한 절이다. 수로왕은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거나, 가뭄이 오래 지속될 때 기우제를 지냈다. 왕이 찾았던 절이지만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대웅전과 고려 시대 때 세운 삼층석탑, 미륵전, 삼성각과 요사채 등이 단출하게 모여 있다. 만어사의 보물은 석탑이나 건물만이 아니다. 미륵전 앞,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너덜겅이 드러난다.

저 아래까지 검푸른 돌무더기가 넘실댄다. 크기가 제각각인 돌들은 당장이라도 꿈틀거릴 듯하다. 꿈에서조차 본 적 없는 압도적인 광경에 잠시 말을 잊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웅장한 경관에 걸맞은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오래전 수로왕이 군림하던 시대, 만어산에 사는 나찰녀와 옥지 연못에 사는 사악한 흑룡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어울리며 마을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렸다. 우박을 내려 농작물이 해를 입는 등 피해가 점점 커지자 이를 보다 못한 수로왕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처를 찾았고, 부처는 만어사에서 설법으로 둘을 교화하기로 한다. 이때 동해의 용과 수많은 물고기가 소식을 듣고 몰려와 부처의 설법을 함께 들었다. 이에 감응한 용과 물고기는 모두 돌로 변해 버린다.

돌덩이가 된 물고기 떼는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이야기를 곱씹으며 너덜 지대로 조심스레 올랐다. 미끄러운 돌을 딛고 천천히 나아간다. 멀리서 바라볼 땐 작았는데, 막상 올라서니 바위 하나하나가 사람 몸만큼이나 커다랗다.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밀양역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밀양역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밀양역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크기가 제각각인 돌들이 지천에 깔렸다.
꿈에서조차 본 적 없는 압도적인 너덜겅 광경에 잠시 말을 잊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새삼스레 자연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른다.

만어사 너덜겅의 돌은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두드리면 종이나 철같이 ‘캉, 캉’ 하고 맑은 소리가 난다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경석, 또는 종석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만어사의 특별함은 너덜겅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륵전에 들자 근엄하게 여행자를 맞는 부처상은 온데간데없고, 5미터가 넘는 거대한 돌이 자리를 꿰차고 있다. 눈이 절로 휘둥그레진다. 전설 속 동해의 용이 바로 이 돌인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자세히 살피면 부처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누가 뭐래도 만어사의 부처는 이 거대한 돌이다.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소원을 빈 뒤 미륵전을 나선다.

해는 벌써 밀양에 늘어놓았던 빛줄기를 서서히 거둬들이는 중이다. 이제 어둠과 달이 찾아올 것이다. 만어산을 내려가면서 거쳐 온 풍경을 곱씹는다. 수려하고도 신비한 곳을 누비는 내내 다정한 볕과 함께했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꺼내 볼 추억을 차근차근 기억 속에 정리한다. 봄, 햇볕 그리고 밀양. 온기가 남은 이곳에 달빛이 한 줄기씩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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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남혜림
photographer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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