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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이야기, 교차하는 사람들

기차역은 인간사의 무수한 만남이 교차하는 운명적 장소다. KTX 개통 19주년을 기념해 철도에서 샘솟은 이야기를 따라 시간 여행을 떠나 본다.

UpdatedOn March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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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탄생과 동시에 스크린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것은 다름 아닌 기차였다. 정거장에 들어서는 기차의 거대한 움직임을 촬영한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 그랬듯, 현존하는 한국 영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 <청춘의 십자로> 또한 기차역을 이야기 무대로 공들여 담았다. 철로를 따라 경의선 열차가 달리는 모습부터 1930년대의 복닥복닥한 경성역 광장 풍경까지, 당대의 첨단 문명과 도회적 정취를 보여 주는 수단으로 철도를 활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 철도의 구심점, 서울역으로 대변되는 기차역이란 공간은 시절을 불문하고 한 인간이 내던져진 세상이자 생애의 한 장이 시작하는 순간으로 표상된다. 1950년대 작품 <어느 여대생의 고백> 주인공 소영부터 1970년대를 풍미한 <별들의 고향>의 애달픈 연인 경아를 지나 2000년대 <친절한 금자씨>에서 막 출소한 금자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수많은 승객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한 서울역은 인물이 의미심장한 걸음을 떼는 무대로 등장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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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KTX가 개통한 2004년 전후 몇 년간을 흔히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기’라 부른다. 새 시대의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기 시작한 까닭에 철도는 이전보다 다양한 역할을 도맡았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찻길 장면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박하사탕>의 영호가 “나 돌아갈래”를 외치는 순간은 충북 충주 삼탄역과 제천 공전역 사이 터널에서, <살인의 추억> 마지막을 장식하는 추격과 격투 신은 경남 진주 개양역과 사천 사천역 사이 터널에서 촬영한 결과물이며,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두 주인공의 운명을 주관하는 결절점은 현재 사라진 서울 용산역 구 역사다. 이처럼 철길과 기차역이 얄궂은 삶을 은유하는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가 하면 기차가 지닌 압도적인 속도감이 이야기를 추동하기도 한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는 ‘기차 액션’을 표방한 활극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오합지졸 사내들이 라이터 하나 때문에 벌이는 소동을 그린다. 주인공 일당은 천안역에서 들이닥친 경찰에게 진압되는데, 실제로는 울산역을 천안역으로 꾸며 촬영했다고 한다. 좀비 영화 <부산행>은 서울과 부산을 잇는 철로 442킬로미터 길이만큼이나 압도적 스릴을 선사한다. 대전역에서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은 실제로 부산 부산진구 부전역에서, 기차가 동대구역에 닿아 가는 모습은 부산철도차량정비단에서 촬영했다는 뒷얘기도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때론 배경을 넘어 배역까지 수행하고, 다른 역인 양 시침 뚝 연기까지 해내는, 영화 속 놀라운 기차역의 목록은 다음 장에서 펼친다.

이곳에서 촬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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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 삼척 도경리역

기찻길은 있는데 기차역이 없는 마을,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간이역을 세운다. 한국 최초 민자 역사인 경북 봉화 양원역을 소재로 한 영화이니만큼 주인공은 기차역 그 자체다. 산골짝 간이역과 철로를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경북 상주와 영주, 강원도 정선과 원주 등 전국 각지를 누볐다. 극 중 승부역으로 등장하는 건물은 강원도 삼척 도경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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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진은 예쁘다>

# 부산 동래역

부산 동래역에 귀여운 꼬맹이 하나와 노숙인 미스 진이 등장한다. 불안 증세를 보이는 중독자 동진까지 합세해 잔잔했던 동래역의 일상은 순식간에 활기를 띤다. 철도 건널목 지킴이 수동과도 어울리기 시작한 이들은 특별한 우정을 쌓아 가며 연대한다. 영화의 주 무대인 옛 동래역은 1934년 동해남부선과 함께 영업을 시작한 유서 깊은 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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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 광명역

미라는 남동생의 엄마뻘 연인과 낯선 아이를 집에 들인다. 그렇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누구보다 애틋한 가족을 이룬다.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모든 인물은 햇살이 들이치는 경기도 광명역 곳곳에서 스치거나 엇갈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광명역의 유려한 건축적 미감이 이야기의 여운을 조금 더 오래도록, 진하게 음미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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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 고양 원릉역

어리고 상처받기 쉬운 시절의 세 소년 기태, 희준, 동윤은 사소한 오해 때문에 서로를 할퀴고 배신한다. 한때는 틈만 나면 텅 빈 기차역을 배회하며 캐치볼을 하고 놀던 해맑은 아이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 찾아온다. 경기도 고양시의 원릉역은 이야기 내내 흐르는 쓸쓸하고 위태로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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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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