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TRAVEL MORE+

공주 시간 산책

충남 공주에서 길을 따라 시간을 되짚는다. 근대, 조선 시대 역사와 백제의 기억이 도시 곳곳에 어렸다.

UpdatedOn May 30, 2022

3 / 10
/upload/ktx/article/202205/thumb/51097-488999-sample.jpg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공주역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공주역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공주역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계절이 바뀔 땐 조용한 곳을 찾아 걷는다. 천천히 걷다 보면 평상시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뭇잎이 겹쳐 생긴 초록빛, 돌 틈을 비집고 피어난 야생화, 묵묵히 기어가는 작은 곤충. 다시 맞은 여름 풍경이 반가워 “어떻게 지냈느냐” 실없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풍경은 말이 없지만,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 어린 이야기를 슬쩍 내어 준다. 잔잔히 흐르는 금강을 품은 곳, 우거진 녹음으로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공주의 이야기를 들으려 KTX에 올랐다. 빠르게 흩어지는 창밖 풍경을 눈으로 담는다.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도시, 공주가 가까워진다.

고요한 시간, 중동성당

공주역에 내려 숨을 깊이 들이쉰다. 흙과 풀 내음이 몸속으로 물밀듯이 밀려든다. 상쾌한 공기로 마음을 충전한 후 원도심으로 향한다. 중동성당은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다. 성당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니 모습이 조금씩 나타난다. 미사를 진행 중인 건물 안쪽에서 희미하게 사람 소리가 들려온다. 입구에는 신자들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였다. 중동성당은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으로 지금껏 자리를 지켜 왔다. 1897년, 프랑스 선교사 기낭 신부가 부지를 마련하고 한옥 건물을 지어 ‘공주성당’으로 이름 지은 것이 시작이었다. 성당이 한옥에서 고딕식 건물로 변모한 것은 1937년이다. 당시 5대 주임신부였던 최종철 신부가 약 3만 원을 들여 완공했다. 성당을 이루는 붉은 벽돌은 건축 당시 현장에서 하나하나 직접 구워 만든 것인데, 80년이 지난 지금도 색감이 아름답다. 그 후 1982년, 교동 본당이 분리되며 공주성당은 현재의 이름인 중동성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중동(中洞). 이름처럼 공주의 중심에서 천주교 신자의 안식처 역할을 해 온 성당이 인자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부로 들어가자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오색 빛으로 반짝인다. 곳곳에 걸린 십자가가 한층 더 신성한 느낌을 준다.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하늘에서 내려다본 성당 모습이 라틴 십자가 모양이라는 것이 실감 난다. 사람의 염원이 공간을 채우고 있어서일까, 평화로운 분위기에 복잡하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참 동안 건물을 감상하다가 성당 밖 한쪽에 마련된 최종철 신부의 무덤으로 걸음을 옮긴다. 고즈넉한 중동성당을 세운 신부를 위해 잠시 묵념한다. 마음에 화답하듯, 무덤 옆 누군가가 봉헌한 초에서 불꽃이 일렁인다.

중동성당 후문에는 예수의 일대기와 천주교 박해 역사를 상징하는 벽화가 걸렸다. 천주교는 17세기 무렵 한반도에 들어왔는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믿는 교리가 조선의 신분제를 흔들기 시작해 조선 정부는 천주교를 박해했다. 도청 역할을 하던 충청감영이 공주에 설치된 까닭에 천주교 박해 당시 공주에서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순교했다. 천주교를 경계한다는 명목으로 교인들을 공개 처형하기도 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황새바위다. 기록에 의하면 처형을 하는 날은 황새바위가 보이는 공산성에 군중이 몰려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군중 속 누군가는 애끓는 마음을 숨기고 가족의 최후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어쩐지 애달픈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다.  

3 / 10
/upload/ktx/article/202205/thumb/51097-489008-sample.jpg

 

공산성 금서루에서는 매주 
주말 ‘웅진 수문병 근무 교대식’이 하루에 두 차례 열리고, 
오후 2시에는 무령왕 동상 주변에서 무령왕 회전의식을 진행한다. 문의 1899-0088

공산성 금서루에서는 매주 주말 ‘웅진 수문병 근무 교대식’이 하루에 두 차례 열리고, 오후 2시에는 무령왕 동상 주변에서 무령왕 회전의식을 진행한다. 문의 1899-0088

공산성 금서루에서는 매주 주말 ‘웅진 수문병 근무 교대식’이 하루에 두 차례 열리고, 오후 2시에는 무령왕 동상 주변에서 무령왕 회전의식을 진행한다. 문의 1899-0088

백제의 시간, 공산성

천주교의 역사를 뒤로하고 백제를 만나러 간다. 공산성 앞 황금빛 동상이 거대하다. 2021년 9월,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아 세운 회전형 무령왕 동상은 왕이 바라보는 방향마다 의미가 다르다. 서쪽을 바라보면 무령왕릉을 가리키는 것이고, 북쪽은 고구려를 여러 차례 격파하고 갱위강국(更爲强國)을 선포한 대왕의 위엄을 상징한다. 남쪽을 바라볼 때는 백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군주의 마음을 표현했다. 위풍당당한 동상이 공산성을 지키는 듯하다. 공산성 입구 역할을 하는 금서루를 지나 성곽 안쪽으로 들어선다. 백제의 기세가 다시 타오르던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활기로 시끌벅적했을 장소에 발을 들인다. 백제는 475년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했다. 공산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도망치듯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가 여기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것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천도 이후 동성왕이 증축이나 보수를 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문주왕이 고구려의 위세를 피해 웅진으로 왔을 때 공산성은 이미 형태를 웬만큼 갖춘 토성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성의 토대를 만들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자 급격한 경사가 펼쳐진다. 경사진 성곽을 올라 높은 고개를 넘으니 탁 트인 풍경이 단번에 드러나며 해방감을 안긴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그 위에 놓인 금강철교, 저 너머 공주 시가지의 풍경이 어우러진다. 공산성 정상부까지의 해발고도는 약 110미터. 길을 따라 오르기만 해도 숨이 차는데, 이 높은 곳에 쌓은 성곽은 정교하기까지 하다. 조선 시대에 지금의 모습인 석성으로 개축했다는 기록이 돌로 공산성을 다시금 다듬었을 옛사람들을 상상하게 한다. 울퉁불퉁한 돌의 곡면을 눈으로 훑는다. 그 시절 자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숲에서 날아온 딱새 두 마리가 번갈아 앞서간다. 다가가니 통통 튀며 다음 나뭇가지로 넘어간다. 귀여운 딱새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간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가 우수수 쏟아진다. 우거진 나무에 이어 넓은 터가 드러난다. 터 끝에는 공산성 북문 공북루가 금강을 바라보고 있다. 공북루 남쪽의 넓은 터는 왕궁 관련 유적이 대거 발굴된 곳이다. 공북루 남쪽 발굴 조사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건물 터와 토목공사를 했던 흔적, 배수로, 저장고, 밤 껍데기, 옻칠한 가죽 갑옷 등을 발굴했다. 시간이 흘리고 간 단서들을 눈으로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적을 거닐며 기와로 만든 집이 가득한 거리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가, 옛사람이 땅속에 저장고를 묻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머릿속으로 마을을 세우고, 배수로에 흐르는 물결을 떠올리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백이 선사하는 매력에 흠뻑 빠져, 과거 어느 날 공산성의 모습을 이리저리 바꾸어 본다.

/upload/ktx/article/202205/thumb/51097-489009-sample.jpg

공산성을 산책하면서 공산성 방문자 센터도 방문해 보자. 백제 웅진성을 3D로 복원한 디오라마관, 영상관, 전시실 등으로 공산성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다.

3 / 10
/upload/ktx/article/202205/thumb/51097-489011-sample.jpg

 

공백에서 과거를 찾다

현재도 공주는 발굴 조사가 한창이다. 왕궁 관련 유적을 발견했지만 왕궁 터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은 공산성 안 쌍수정 일대를 왕궁지라고 부른다. 이곳에도 연못과 건물 터 등이 존재한다. 쌍수정 뒤편에는 단을 높여 무언가의 자리를 만든 흔적도 있다. 연못이 있고, 단을 높여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면 왕이 머무르던 곳이 아니었을까. 다만 이 역시 추정일 뿐 정확하게 왕궁지라고 결론 내릴 수 없기에 우리는 시간이 남긴 흔적을 집요하게 좇는다. 추정을 확신으로 만들어 미래의 우리가 과거 너머를 들여다보도록 말이다.
현재의 공주를 여행하며 근대와 조선 시대, 백제까지 다녀왔다. 시대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인 공주에는 아직 꺼내지 못한 비밀이 많다. 언젠가 그 비밀이 세상을 환히 비출 날을 기다리며 또 다른 공주의 이야기를 찾으러 걸음을 옮긴다. 공주가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제1회 공주 유구색동수국정원 꽃 축제

제1회 공주 유구색동수국정원 꽃 축제

6월, 공주를 방문한다면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수국 축제를 놓치지 말자. 유구읍에 위치한 유구색동수국정원에서 ‘유구花원, 일상의 즐거움’을 주제로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꽃 축제가 열린다. 파란색, 분홍색, 흰색 등 다채로운 색을 지닌 수국이 정원에 가득하다. 수국과 어울리는 어쿠스틱, 재즈 등 잔잔한 음악을 연주하는 수국정원 공연과 유구천 카누 체험도 준비했다. 해가 지면 빛을 활용한 조형물이 여행객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신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포토 존에서 인생 사진도 남긴다.
문의 041-840-3800

<KTX매거진>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남혜림
photographer 신규철

RELATED STORIES

  • TRAVEL

    삶을 걷다, 운탄고도 영월 구간

    군주부터 광부까지, 이 길을 스친 이들의 숭고한 걸음을 생각한다. 강원도 영월의 자연과 삶이 깃든 운탄고도 1, 2, 3길을 걷는 봄이다.

  • TRAVEL

    선비처럼 영주 나들이

    만물이 생기를 품은 날, 봄볕이 스민 경북 영주를 거닐다 전통문화와 살아 있는 역사를 마주했다.

  • TRAVEL

    이어 붙인다는 희망

    예술과 봉제 산업의 역사가 재봉틀로 꿰맨 듯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은 옛 공간들이 서울 창신동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 TRAVEL

    수장고를 누비는 모험

    100만 점 넘는 유물과 자료를 소장한 국립민속박물관이 경기도 파주에 수장고형 박물관을 조성했다. 수장고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 TRAVEL

    밀양은 언제나 축제

    늠름한 영남루, 흩날리는 이팝나무꽃의 환대를 받으며 경남 밀양 땅에 들어선다. 누구보다 고장을 사랑하는 사람, 황선미 문화관광해설사가 든든한 동행자로 나섰다.

MORE FROM KTX

  • CULTURE

    베트남 푸꾸옥 그랜드 월드 방문자 센터

    대나무로만 지은 건물이 수려하다. 겉과 안 구조가 달라 눈이 즐겁다.

  • LIFE STYLE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달리다

    기차와 사이클의 공통점, 저탄소 친환경 이동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철도가 창단한 대전코레일사이클단은 오늘도 금빛 바퀴를 구르며 건강한 내일을 꿈꾼다. 김명곤 감독에게 선수단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청했다.

  • TRAVEL

    그 도시의 말맛

    오매나, 산꼬라데이, 모디, 이바구···. 사투리로 쌓아 올린 신기하고 맛깔스러운 놀이터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 TRAVEL

    주민이 초대하는 다정한 여행, 고흥

    고장의 여행 자원을 주민 여행 기획단이 직접 발굴하는 프로그램 ‘노마드 고흥’. 그들의 손길이 닿은 여행 코스를 따라 전남 고흥을 거닐었다.

  • TRAVEL

    우리 같이 광명 나들이

    폭포 위 출렁다리를 누비고, 동굴을 탐험하며 더위를 식힌다. 아이와 함께 경기도 광명으로 소풍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