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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 영주 선비세상

오늘의 기술로 어제의 세상을 연다. 경북 영주 선비세상에서 한국 정신문화의 정수, 선비의 세계를 생생하게 만난다.

UpdatedOn July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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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영주역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풍기역에도 정차한다. 선비세상에서는 풍기역이 가깝다.

고색창연한 한옥으로 들어간다. ‘더불어 살다’라는 문구가 먼저 맞고, 이어서 대형 화면에 영상이 펼쳐진다. 겉은 한옥인데, 널찍하니 시원한 내부는 첨단 시설이라 그 대비가 재미있다. 붓으로 그린 듯한 영상의 주제는 선비가 생각한 집의 의미다. 조화, 정신, 성찰, 존중, 품격, 비움, 베풂 등 선비가 추구한 가치가 한옥 공간 곳곳에 구현되었음을 깨닫는다. 투자와 과시가 아닌 공존과 수양이 목적인 집. 단순히 옛집으로서 한옥을 넘어 선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한옥을 재발견한다. 영주가 보여 주는 선비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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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체험형 전통문화 테마파크

유네스코 세계유산 소수서원과 부석사의 고장 영주에 선비세상이 문을 연다. 소수서원과 선비촌 근처, 96만 제곱미터(약 29만 평) 면적에 10여 년을 준비한 전통문화 테마파크다. 서원의 발상 도시답게 주제는 한국 정신문화의 정수라 할 선비다. 전국에 한옥마을이나 전통 관련 전시관이 많지만 선비의 삶과 정신세계를 속속들이 체험하도록 구현한 시설로서는 단연 돋보이는 곳이다.

선비세상은 한옥, 한복, 한식, 한지, 한글, 한음악 등 여섯 개 촌으로 나뉜다. 각 촌마다 문화관·공방·극장·놀이방처럼 주제에 맞는 체험·관람 공간을 배치해, 들어가긴 쉬워도 나오긴 어렵다. 거의 모든 시설이 인터랙티브 기능을 갖추어 직접 터치하고 실행하는 가운데 선비의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한옥문화관에서 화면으로 선비와 한옥의 관계를 보면서 집의 의미를 생각하고, 실제 크기로 재현한 선비의 방에 이르렀다. 맞은편 벽에는 선비의 하루를 글과 그림으로 게시한다. 조선 선비의 기록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해 뜨기 전 일어나 공부하고, 아침엔 자녀에게 글을 가르치거나 독서를 하고, 식사를 마친 다음 다시 자신을 살핀다. 독서·사색·교류·글쓰기·교육으로 하루를 채우는 삶이라니, 학문과 사고의 깊이가 어디까지 미쳤을까 싶다.

그 옆에서는 ‘구구소한도’ 풍습을 터치스크린으로 체험한다. 시린 겨울날,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81송이 매화를 하루하루 칠하다 마침내 완성하고 문을 열면 매화가 피어 있는 정취. 문살 종류를 고르고 백매, 연분홍매, 홍매 중 선택한 다음 색칠을 해 나만의 구구소한도를 그리는 사이, 봄을 이토록 아름답게 맞이할 줄 알았던 옛 선비의 마음이 되어 본다. 책만 읽어서야 선비가 되지 못하는 법이다. 이어지는 방은 문득 어둠에 잠기고 영주의 풍경과 소리를 담은 영상이 시작된다. 영상에 홀려 가만히 앉는다. 사색과 비움. 머리에 넣은 지식이 내 안에 자리 잡는다. 지금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쁜가. 처마에서 비 떨어지는 소리를 몇 분간이라도 집중해 들을 여유조차 없는가. 머리에 욱여넣고 성과를 뱉어내기 급급해, 멈추어 소화하고 감동하는 방법을 잊어버리진 않았는가. 어두운 방에서 영주를 감상하며 여백을 즐기는 능력을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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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세상은 18미터 길이의 대형 자동인형극을 관람하는 한복촌을 비롯해 한옥, 한식, 한지, 한글, 한음악촌으로 구성했다. 공연과 작은 결혼식 등이 가능한 시설도 마련했다.

선비세상은 18미터 길이의 대형 자동인형극을 관람하는 한복촌을 비롯해 한옥, 한식, 한지, 한글, 한음악촌으로 구성했다. 공연과 작은 결혼식 등이 가능한 시설도 마련했다.

만지고 감상하며 재미있게, 깊이 있게

이제 겨우 한옥촌이다. 그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른 촌도 체험하고 느낄 거리가 풍부하겠다는 기대 반, 조급함이 반이다. ‘품격을 입다’라는 문구가 맞이하는 한복촌은 선인의 옷차림이 주제다. 선비의 일상복과 갓은 물론 과거 급제자에게 임금이 하사한 어사화를 단 복두(모자)도 비치해 기념사진을 찍는다. 무엇보다 오토마타 인형극이 하이라이트. 무려 18미터 길이에 걸쳐 진행하는 자동인형극이다. 부석사, 소수서원, 무섬마을 등 영주 곳곳과 한강, 한양 경복궁을 배경으로 주인공 영주 도령이 진정한 선비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았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장치가 예쁘고 신기해 처음부터 끝까지 발을 동동 구르고 감탄했다. 미디어아트관에서는 선비가 이상향으로 여긴 중국 무이구곡과 영주의 죽계구곡을 형상화한 미디어 아트 작품이 눈을 사로잡는다.

주말에 벼룩시장이나 퍼레이드가 열리는 선비마당을 지나 한식촌에 들어선다. 주제어는 ‘바르게 먹다’. 제 고장에서 제때 나는 재료로 과하지 않게, 재배한 이와 굶주리는 이를 헤아리면서 먹는 일은 건강의 비결이자 선비로서 지녀야 할 삶의 태도였다. 마루에 놓인 소반 역시 상에 모니터를 설치한 체험 시설이다. 인삼속미음, 꿩탕, 가지모점이 같은 음식을 골라 나만의 밥상을 만든다. 조리법을 이메일로 받아 볼 수 있어 더욱 유익하다. 삼신상, 돌상, 책거리상, 혼례상 등 인생의 의미 있는 순간에 차린 밥상도 구경한다. 한지촌으로 건너가는 길에는 영주의 자랑 소백산이 선비세상의 기와지붕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름다워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마침 정자를 세워 놓아 다리를 쉬기 좋다.

한지촌에서는 전통 종이인 한지를 제조하는 체험이 기다린다. 전문가의 안내를 따라 대나무 발에 종이를 뜨고 한지를 완성하는 데 30여 분. 지금껏 종이를 사용하기만 했지, 생산한 경험은 처음이라 감격스럽다. 열을 가해 건조한 한지가 뜨끈하다. 현대에는 기계의 도움을 빌린다지만 과거엔 과정 하나하나가 훨씬 오래 걸렸다. 사람의 손과 지혜, 기술, 시간이 모여야 종이가 만들어진 시절, 한지 한 장이 얼마나 귀했을까. 종이를 앞에 두고도 글을 쓰려면 또다시 기다림이 필요했다. 벼루에 물을 부어 먹을 가는 동안 말을 고르고 정말 해야 하는 말인가, 오류는 없는가 성찰한 끝에 마침내 붓을 잡았다. 그런 시간이 한 사람을 선비로 키웠다. 우리가 선비가 되지 못한 이유는 그런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글촌은 “나랏말ᄊᆞ미”로 익숙한 <훈민정음 언해본> 탁본을 비롯해 초성·중성·종성으로 이루어진 한글 원리를 깨치며, 올바른 한글맞춤법을 게임하듯 알아보는 체험을 마련했다. 전래동화극장, 그림책방, 대형 실내 놀이터도 있어 아이와 방문한 이에게 더할 나위 없겠다. 한음악촌에서는 빈백에 편안히 기대 앉아 전통음악을 듣는다. 목재로 지은 건물 음향이 훌륭하다. 

선비가 되어 보는 하루

여섯 개 주제로 구성한 공간을 누비다 보니 어느새 해가 기운다. ‘구구소한도’를 그리고, 한지를 만들고, 그 한지에 붓펜으로 편지를 써 부치고, 다례를 배우고, 영상을 감상하고, 한옥과 한옥 사이 길을 걸으며 건물과 산의 어우러짐에 감동하는 일로 하루를 채웠다. 한옥, 한복, 한식, 한지, 한글, 한음악 모두를 새롭게 바라보고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시간 여행이라는 말을 흔히 하지만 과거는 흘러갔고 역사책 같은 글로나 전할 뿐이다. 선비세상은 선비 정신이라는 가치를 첨단 기기로 즐기는 가운데 자연스레 새기게 한다. 잘 놀고 나니 정신이 남는다. 물론 추억도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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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현정
photographer 이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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