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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기도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특별전에서 함께 이룩해야 할 평화를 보았다.

UpdatedOn June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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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죽어 오열하는 얼굴을 본다. 고향에서 쫓겨난 뒷모습도 보고 있다. 뉴스가 전하는 전쟁의 장면들을 언젠가 마주한 것 같다. 1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사람들은 목메어 울며 집을 떠나야 했다. 전쟁마다 이름이 다르건만, 슬픔은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 짓이긴 오늘을 끌어안고도 내일이 두려운 현실은 다 아프다. 전쟁이 뿌린 슬픔이 가라앉기 전에 다시 전쟁, 그리고 슬픔은 또 한 번. 평화는 인류가 가닿지 못한 환상인 걸까. 8월 28일까지 〈피스 포 차일드(PEACE for CHILD): 전쟁 속 어린이를 위한 평화의 기도〉 특별전을 여는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존재해선 안 되는 전쟁과 유린당하는 인권, 위협받는 어린이의 세 가지 주제를 함께 생각하자 제안하는 전시다. 제목처럼 기도가 필요한 시간이다. 우리가 곁눈질하면서 자주 고개를 돌리는 사이에 지금 다시 전쟁, 그리고 슬픔은 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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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기억하는 문화 공간

창의문에서 인왕산을 넘어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에, 현재는 없으나 조선 시대엔 서소문(소의문)이 자리했다. 당시 서소문 밖은 활기가 넘쳤다. 삼남 지방에서 올라온 특산물을 사대문 안으로 가져가는 시전 상인, 여기저기 펼쳐진 난전에서 흥정하는 백성이 가득한 곳. 나라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도록 서소문 밖에 처형장을 세웠다. 일벌백계로 다스리기 위한 처형장에서 숱한 이가 최후를 맞았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나라에 탄압받은 천주교인 역시 신앙을 명목으로 목숨을 잃었다. 믿음을 죽을죄로 재단한 사나운 시절이었다. 그 땅 아래에 2019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들어섰다. 공원 지하 주차장을 리모델링한 박물관은 기억 아래에 묻힌 역사를 세상으로 끄집어냈다. 매년 10여 차례 전시와 공연을 개최해 문화를 창조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망각의 강을 건너 창조의 대지로 향하는 돛배에 올라탄 듯, 과거를 더듬으며 붉은 벽돌담 고아한 박물관에 들어선다.

경사진 길을 내려가 지하 1층, 빛의 광장을 통과했다. 이제 전시가 시작한다. 작가 14명이 만든 특별전 작품은 한데 모이지 않고 드문드문 곳곳에 놓였다. 엄숙히 뻗은 중앙 통로, 가지인 양 아담하게 갈라지는 길들, 홀연 나타나는 광대한 홀이 크고 작은 예술을 품었다. 빛과 어둠이 경건하게 순환하는 지하 건축에, 만약 테두리를 그어 안과 밖을 나누고 예술을 몰아넣었다면 감상은 필시 단절된다. 찬찬히 걷는 동안 하나씩 마음으로 다가오는 작품을 멈춰 응시하고 가슴에 담는다.

지하 1층 자그마한 방에서 한진수 작가의 ‘버블 워(Bubble War)’를 만났다. 기계가 뿜은 거품이 벽에 부딪혀 포말을 일으킨다. 겉모습은 비눗방울 놀이와 다를 바 없다. 사방에 날리는 둥그런 방울을 깡충 뛰어 터뜨리는 아이가 떠오른다. 하지만 기계는 탄약 상자를 개조한 것이다. 거품은 아이가 부는 정도와는 비교할 바 없이 빠르게 날아간다. 원래 하얗기만 했을 벽을 검은 포말 자국이 덮어 간다.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에 쓰러지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이는 비눗방울을 불고 어른은 총알을 쏜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변하고 있는가.

허보리 작가는 양복과 이불을 이어 탱크를, 넥타이를 바느질해 수류탄과 소총을 만들었다. ‘부드러운’ 시리즈는 일상 소재로 제작했기에 친근하면서도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치기 위해 고안한 무기와 아무도 해치지 않는 작품. 형상이 똑같은 두 사물 가운데, 인류는 하나를 선택해 맹렬하게 나아갔다. 참으로 긴 세월을 달려왔어도 줄곧 내달린다. 그렇지만 아직은 뒤돌면 희미하나마 보인다. 아무도 해치지 않는 그것은, 이불로 만든 작품처럼 언제나 존재했다. 그것이 더 멀어지기 전에,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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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삶과 평화를 위한 바람

지하 3층 콘솔레이션 홀에 이르렀다. 밖에선 2미터 정도 뜬 벽에 시야가 막혀 전체를 조망하지 못한다. 벽 밑을 지나자 널찍한 사각 홀이 온전하게 드러난다. 압도적일 만큼 큰 벽에 에워싸인 홀은 낮고 어둡다. 14미터 위 지상에서 가느다란 빛줄기가 떨어진다. 나를 낮추며 다가가 빛줄기를 붙잡고는 지상으로, 긍휼을 내려 주는 대지로 오르고 싶어지는 고결한 공간. 형장에서 죽임당한 이들을위로하는 콘솔레이션 홀 거대한 벽이 돌연 하태범 작가의 영상 작품을 투영한다. 먼저 ‘눈물’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체를 보여 준다. 그게 차라리 눈물이라면…. 수십, 수백 발의 포탄이 수직 강하하는 영상이 전쟁 복판의 처절한 광경을 바로 여기에 끌어온다. 쏟아지는 포탄은 숱한 이에게 생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는 오늘도 누구는 보았고 눈을 감았다. 평화는 진정 인류가 가닿지 못한 환상인 걸까. ‘눈물’이 끝났다. 콘솔레이션 홀 벽은 다음 작품 ‘어린이들’을 비춘다. 영상 속에서 붉은 박물관 벽돌이 점점 밝아지더니 어린이가 한 명, 두 명 돌담길 앞에 선다. 실루엣이지만 천진스러운 표정이 눈에 선하다. 포탄에서 아이로, 전쟁에서 웃음으로,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그곳으로.

박물관에서 나왔다. 몇몇이 한갓진 산책을 즐기는 서소문역사공원에 꽃이 피었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고 구름 자욱한 하늘에선 옅어도 환한 햇살이 내린다. 어디선가 재잘대는 아이들 소리가 날아든다.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바람과 햇살과 소리를 따라 공원을 거닐었다. 지금은 기도가 필요한 시간이다. 모두의 순간이 다 지금 같기를. 고개 돌리지 않고 당신의 손을 잡으려 노력할 때 세상은 꼭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나와 함께 거니는 사람들의 얼굴이 햇살처럼 환하다. 

<PEACE for CHILD: 전쟁 속 어린이를 위한 평화의 기도>전

<PEACE for CHILD: 전쟁 속 어린이를 위한 평화의 기도>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인 올해 8월 28일까지 특별전을 진행한다. 정당화할 수 없는 전쟁, 전쟁으로 유린되는 인권, 그 안에서 가장 위협받는 어린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현대미술의 조형 언어로 풀어내는 전시다. 곽남신, 김유선, 김주연 등 작가 14명이 회화, 조각, 설치, 영상 80여 점을 통해 평화를 이야기한다. 문의 02-3147-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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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규보
photographer 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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