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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를 향한 모험, 난센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은 사랑하자 외쳤다, 전쟁에 시름하는 세상을 향해서. 사랑만이 답이 된다는 그의 선언은 영원할 진실이다.

UpdatedOn March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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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구원할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사랑밖에는.” 지구 한편에서 총알과 포탄이 쏟아지고 있다. 고향이 파괴되고 가족이 쓰러진다. 갖은 이유를 들어 아무리 전쟁을 합리화하려 한들 우리는 안다. 사람을 위한, 인류를 향한 사랑을 믿는 자에게 전쟁은 존재할 수 없다. 전쟁 포로와 난민을 구호하던 프리드쇼프 난센이 사랑을 호소할 때 세상은 종종 비웃고 외면했다. 그래도 그는 믿었다. 절망한 포로와 난민, 기아에 허덕이는 수백만이 그가 놓은 길을 걸어 내일로 나아갔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지구 한편은 다시 전쟁이다. 오늘, 절망한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1861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난센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울창한 숲에서 뛰놀며 자랐다. 생명의 신비, 탐험에 대한 꿈이 어린 마음을 사로잡았다. 군인이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도 크리스티아니아대학교에서 동물학을 공부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동물학 전공자로서 북극해 탐험에 동행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검은 바다를 떠다니는 빙하와 밤하늘 오로라에 압도된 난센은 자연과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1887년, 대학교에 스물일곱 살 동물학자의 당돌한 제안서가 도착한다. “지원을 요청합니다. 스키를 타고 그린란드 내륙을 탐험하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 개 썰매와 대피소의 도움을 받지 않는 그린란드 횡단은 전인미답의 길이었다. 모두가 코웃음 쳐도 이듬해 그린란드로 떠났다. 동해안에서 출발해 스키 폴을 저으면서 영하 45도 혹한을 뚫고 두 달 만에 서해안에 닿았다. 귀환 후 집필한 모험기엔 횡단 과정에서 만난 이누이트를 존중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자연과 사람을 더하면 무엇이 될는지. 난센은 답을 찾는 모험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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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6월, 노르웨이에서 프람호가 출항했다. 시베리아로 가 북쪽으로 흐르는 해류를 타고 북극점에 도달할 계획이었다. 표류하고 올라가다 다시 표류했다. 영하 50도 강추위가 시시때때로 들이닥쳤다. 난센은 포기하지 않았다. 2년 뒤 4월, 북위 86도 14분에 당도했다. 아무도 올라서지 못한 가장 먼 북쪽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난센이 돌아오자 세계가 열광했다. 영웅적인 탐험 서사를 써 내려간 그는 대학교 교수, 외교 대사로 활동하며 학자이자 정치인의 명성도 얻었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000만 명이 사망한 전쟁을 인류는 처음 경험했다. 경악한 난센은 두 번째 결심을 했다. 자신의 명성, 정치적 영향력을 사람을 구하는 데 바치기로 한다.

20세기 초, 국제 미아나 다름없던 수백만 난민을 위해 난센은 오늘날 ‘난센 여권’으로
불리는 신분증명서를 만들었다. 이는 난민 보호 제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시초가 되었다.

20세기 초, 국제 미아나 다름없던 수백만 난민을 위해 난센은 오늘날 ‘난센 여권’으로 불리는 신분증명서를 만들었다. 이는 난민 보호 제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시초가 되었다.

20세기 초, 국제 미아나 다름없던 수백만 난민을 위해 난센은 오늘날 ‘난센 여권’으로 불리는 신분증명서를 만들었다. 이는 난민 보호 제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시초가 되었다.

당시엔 세계 각지에 흩어진 포로들의 운명을 책임질 기관이 없었다. 국가 간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포로들은 공포에 떨었다. 난센이 나섰다. 국가를 대신해 상대 국가와 협상했으며 조직을 만들어 음식, 의약품, 선박을 들여왔다. 그는 1922년 여름까지 26개국에서 45만 명을 집으로 데려왔다. 같은 시기 러시아 기근에 이은 대규모 아사 사태를 통치자들이 덮으려 할 때도 난센은 행동했다. 모스크바를 방문해 정치인들을 만났고 국제연맹 연단에 올라 러시아를 돕자고 외쳤다. 공산주의 정권을 불신하는 몇몇이 이념의 잣대를 흔들면서 힐난을 퍼부었다. “2000만 명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름으로, 순수하고 거룩한 모든 것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너무 늦어 후회하기 전에 서둘러야 합니다.” 난센은 정치인에게 매달리기보다 개인을 변화시키려 했다. 글을 쓰고 연설하고 순회강연을 다녔다. 비난과 경멸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무엇도 사람보다 중요할 순 없었다.

난센의 시선은 인류에 가닿았다. 전쟁, 기아, 고통, 좌절….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야 하는 세상. 인간의 삶이 무너진대도 인간은 무너지면 안 된다. 자비로 구호소를 세워 굶주린 사람들을 들이고 먹였다. 50여 국가를 설득해 오늘날 ‘난센 여권’으로 불리는 난민 신분증명서를 만든 뒤 러시아, 터키, 시리아 등 고통받는 이들에게 전달했다. 1922년 노벨평화상을 받고는 상금의 절반을 대기근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에, 나머지는 그리스 난민에게 기부했다. 군비를 축소할 것, 평화로 나아갈 것을 부르짖은 난센은 1930년 5월 13일에 일흔 살 나이로 눈을 감았다. 삶이라는 모험을 통해 그는 말했다. 자연과 인간, 저 숭고한 생명들을 사랑하는 것만이 모든 질문의 대답이 된다는 진실을. 결국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평범하고도 경이로운 그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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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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