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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표에서 시작되는 변화

수많은 내가 모여 우리가 되고, 내 작은 한 표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3월을 맞아 선거 관련 영화를 통해 우리가 가진 힘을 확인해 본다.

UpdatedOn February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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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믿기 힘들 만큼 광활한 우주에서,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의 티끌 같은 존재라고. 수를 어림잡기조차 힘든 생명들 사이를 별 도리 없이 부유하는 존재라 여기기도 쉽다. 세상은 넓고 생명은 무수한데 홀로인 나는 너무 작다. 나라는 존재가 이처럼 미약하니 굳이 애를 써 본들 삶이, 미래가 변할까. 영화 <스윙 보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대통령 선거 결과 두 후보가 동률을 이루었다. 선거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켜 주인공 버드만 재투표해야 한다. 그의 한 표가 다음 대통령을 결정한다. 그의 선택이 미래를 바꿀 예정이다. 영화이기에 한 표의 의미를 극적으로 그렸지만, 사실 표의 무게는 전부 똑같다. 선거 결과는 무수한 고민과 선택이 모이는 도착지이며, 버드는 조금 늦게 그곳으로 출발했을 뿐이다.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3월 9일, 버드의 선택과 다르지 않은 한 표가 주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밝아지도록 힘쓸 일꾼을 이날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국회의원 선거도, 주민 대표나 학급 반장 선거도 본질은 동일하다. 나를 대신해 공동체를 돕고 이끄는 대표, 그를 뽑을 권리를 가진 나, 그리고 둘을 하나로 묶는 선거는 공동체의 초석이자 뼈대다. 선거가 사회를 어떻게 달라지게 하는지,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 결정이 실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버드의 사례가 일러 준다. 극적으로 그리되, 그래서 진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화 속 선거 이야기를 하나씩 소개한다.

희망으로 나아가려는 용기

공자는 정치의 뜻을 묻는 제자를 향해 “먼저 앞장서고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봉사가 천명인 위정자에게 솔선수범과 성실보다 중요한 덕목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비욘드 더 웨이브>는 인기 배우에서 행동하는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일본인 야마모토 타로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았다. 2011년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급격하게 우경화된다. 외국인을 혐오하고 국가를 최우선하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사회의 민낯을 목격한 그는 편한 삶을 포기하고 참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로 들어가 정치권과 매스컴이 덮으려 하는 실상을 직시한 뒤였다. 국회에서 동료 의원들에게 “당신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가” 따지고, 원전 사고의 적나라한 현실을 편지로 써 왕에게 보내기도 한다. 이로 인해 반대 세력에게 협박받아도 멈출 수 없다. 대립을 부추기는 선동에 속지 않는 지성과 모두가 알겠다면서 눈감는대도 “아니”라고 소리치는 용기가 이 시대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 미미할지언정 사회를 차츰 변화시킬지 모르는 야마모토 타로의 참의원 당선은, 뜻 있는 시민이 행사한 한 표가 뭉친 결과라는 것. 영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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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지하듯, 선거는 희망이자 좌절이기도 하다. <맹크>에서 주인공인 작가 맹키위츠가 영화 시나리오 집필을 결심한 계기가 그러했다. 1930년대 미국, 권력에 허기진 정치인과 돈이 궁한 영화사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라는 접점에서 만난다. 영화사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배우를 동원해 거짓 홍보 영화를 제작하고, 후보는 결국 주지사에 당선된다. 이를 지켜본 맹키위츠가 환멸을 느껴 쓴 시나리오, 영화사 최고 걸작 중 하나인 <시민 케인>이다. 선거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다소 어둡게 표현했으나, 이 또한 주권자가 종종 당면해 온 현실이겠다. 볼리비아 대선에 뛰어든 선거 전문가가 지지율이 바닥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스토리 <프레지던트 메이커>, 정치는 연극이고 선거는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믿는 사람들의 시장 선거 참여기 <이리지스터블> 역시 때로 익살을 버무린 장면에 진지하게 곱씹어 볼 주제를 새겨 두었다.
 

<특별시민>은 선거 과정의 단면을 묘사한 한국 영화다.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게 아닌 사람이 믿게 만드는 게 선거라 규정하는 시장 후보 변종구가 ‘선거꾼’에 가까운 전략가 심혁수를 파트너로 선택한다. 상대 후보도 승리하고자 저열한 행위를 벌인다. 조직과 협잡하고, 검은돈을 주고받고, 자신의 치명적 과오를 가족에게 전가하는 후보들의 악행은 시민만 바라보겠다 약속하는 서글서글한 얼굴 뒤에 숨어 버린다. 누가 당선되든 불의한 대표자가 탄생하는 불의한 후보들의 맞대결이 세계 역사에 기록된 몇몇 부조리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주지하듯, 하나하나 희망이고 좌절이기도 한 선거는 주권자들의 한 표가 그러한 것처럼 기어이 한 곳으로 모여든다. 공동체가 다다라야 하는 곳,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그곳엔 사랑과 평등의 가치만이 진실이 되어 줄 것이다. <오직 사랑뿐>이 선거를 소재 삼아 전달하는 이야기엔 이런 꿈이 담겼다. 1940년대, 아프리카 국가 베추아날란드의 왕자 세레체 카마와 영국 출신 속기사 루스 윌리엄스가 만나 사랑을 키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레체는 청혼하고 루스는 받아들인다. 그러자 작은 나라 베추아날란드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영국과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 둘의 결혼을 반대한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면서. 루스를 여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국민들, 세레체를 굴복시키려 획책하는 영국의 틈바구니에서 세레체는 추방되고 만다. 이건 타고난 겉모습으로 옳고 그름을 재단한 미욱한 시대의 실책 중 하나일 뿐이다. 다름과 틀림을 동일시하는 동안 인류는 얼마나 많은 오류를 저질렀는지.

영화는 1966년 보츠와나공화국 건국 실화를 각색했다. 실제 인물 세레체는 왕권을 포기하고 선거를 통해 보츠와나 초대 대통령이 된다. 루스는 여생을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인권 운동가로 활동했다. 왕위에 연연하지 않고 탄압을 감내하면서도 반려자를 향한, 자국민을 위한 진심을 내보인 둘에게 결국 사람들은 표를 던졌다. 사랑과 평등의 가치만이 진실이 되어 주는 세상, 여전히 작은 나라 보츠와나가 우리에게 그곳을 가리켜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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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결정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새삼스러워도 이쯤에서 상기해 본다. 공동체의 내일을 결정짓는 선거에서 공동체의 절반을 배제한 시절이 존재했다는 사실.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늦은 축인, 한국보다도 늦은 1971년에야 여성 참정권을 보장했다. 역사는 말한다. 인종차별은 물론이거니와 신분제, 노예제도, 독재에 따른 억압은 저절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가만히 앉아서는 아무리 외쳐도 그른 처우에 맞서기 힘들다. <거룩한 분노>의 주인공 노라는 그런 각성의 과정을 거친다. 가부장이 절대 권위를 가지는 스위스 시골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던 그에게 부당한 사건들이 들이닥친다. 그리고 우연히 여성 참정권에 대한 글을 읽은 뒤, 지금껏 앉아만 있었음을 깨닫고 일어나 목소리를 높인다. 우린 왜 의지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가정의 소유물이 되었는가? 용기 내 외치고, 뜻을 함께할 사람을 모으고, 변화를 주도한다. 비난이 쏟아지지만 멈출 수 없다. 야마모토 타로처럼, 어떤 시대든 지성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더 이상 외면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다룬 <서프러제트>, 2018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를 들여다보는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에서도 용기를 내 일어난 이들의 외침을 듣는다. 메아리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같이 나아가는 일 또한, 주권자에게 투표가 그런 존재이듯이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갈 권리이자 사회적 책무임을 기억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레타 툰베리>에서 스웨덴의 열다섯 살 학생 그레타 툰베리는 2018년 1인 시위를 벌인다.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 기후 위기를 핵심 의제로 정하라 요구한다. “위기를 똑바로 마주해야 합니다. 미래 세대의 모든 눈이 당신을 향합니다.” 인류의 존망을 좌우할 만큼 심각한 환경문제를 직면하지 않는 대다수에게 그레타의 행동은 반향을 일으킨다. 그에게서 비롯된 ‘미래를 위한 금요일’ 동맹 휴학이 스웨덴을 넘어 각국으로 퍼졌고, 세계 곳곳에서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정당이 괄목할 결실을 거두었다.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미약한데 굳이 애를 써 본들 삶이, 미래가 변할까? 삶도 미래도 변한다. 우리가 함께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 결정에서, 미래 세대가 주목하는 나의 한 표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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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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